[사설]北, 김정일 遺訓 개성공단마저 포기하려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9일 03시 00분


북한이 어제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와 개성공단사업 잠정중단을 선언했다. 2004년 12월 시제품이 나온 뒤 남북관계의 숱한 풍랑 속에서도 8년 4개월 동안 버텨온 개성공단이 존폐의 기로에 선 것이다. 예전에도 산발적 통행제한 조치는 있었지만 종업원 전원 철수는 초유의 강공(强攻)이다.

이번 결정은 북한의 대남(對南) 총책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 현장을 방문한 직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위임’에 의한 담화 형식으로 발표했다. 벼랑 끝까지 가보겠다는 북한 최고지도부의 의중을 담았음에 틀림없다. 김 비서는 개성공단이 북한 김정은 통치체제의 ‘돈줄’이라는 남측의 언급을 “최고 존엄을 모독한 참을 수 없는 악담”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인질 구출작전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 것을 두고도 “호전광들의 북침도발”이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북측은 담화에서 “이번 사태가 어떻게 번지게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단서를 붙여 정상화의 불씨는 꺼뜨리지 않았다. 북한으로서도 연간 근로자 수입으로 8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달러 수입원인 개성공단을 일도양단(一刀兩斷) 식으로 자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5만4000여 북한 근로자들과 그 부양가족 20만∼30만 명의 생계도 걸려 있다.

남북의 긴장상태는 지난달 5일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과 남북불가침 기본합의 파기 선언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북한이 개성공단 남측 주재원 500여 명의 귀환까지 막은 것은 아니지만 군사분계선을 폐쇄하면 우리 국민이 억류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공단 정상화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판단되면 북의 신분보장 약속을 받은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근로자의 전원 귀환을 권유하는 것이 옳다. 통행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성공단의 정상적 운영은 불가능하다.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을 대남 공세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이용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다. 어떤 나라가 툭하면 공단을 폐쇄하겠다는 북한에 투자를 하겠는가. 개성공단은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이자 민족 공동번영의 시험장이다. 북으로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遺訓)사업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 평가되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것은 남북 모두에 득(得)보다는 실(失)이 훨씬 크다.
#북한#개성공단#종업원 전원 철수#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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