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좀비를 위한 과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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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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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원조가 아프리카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 경제학자인 담비사 모요는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 모기장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것은 그 지역의 모기장 제조업체를 말라 죽게 하고 주민들의 일자리를 뺏는 잘못된 행위라고 일갈했다.

모요 박사는 “원조의 많은 부분이 아프리카 대륙의 개발 성과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서구의 입맛에 맞는 이런저런 유형의 정권을 세우고 유지하는 데만 사용됐다”고 지적하고, 이를 ‘죽은 원조(Dead Aid)’라고 불렀다. 아프리카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죽은 원조’는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좀비(살아있는 시체)에게 먹을 것을 대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과학문화사업은 그 역사가 꽤 긴 편이다. 1967년 한국과학기술후원회로 발족하여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과 한국과학문화재단을 거쳐 지금의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 자리 잡았으니 장장 46년의 세월을 자랑한다. 정부의 정보문화사업을 맡고 있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정보통신훈련센터로 출범한 1984년보다 17년이나 이르다. 그런데 먼저 시작한 과학문화가 정보문화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비들 때문이다. 평소에는 과학문화에 대해 마치 죽은 것처럼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먹이(예산)만 보면 갑자기 생기가 돌며 미소를 띠거나 이빨을 드러내는 족속이다. 건전한 과학문화를 재생산하지 못하고 예산에만 침을 흘리는 대학, 연구소, 기업, 시민단체를 말한다.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좀비는 먹이를 끊으면 식물인간처럼 바로 죽어버리거나 거머리처럼 달라붙거나 살쾡이처럼 할퀴기 때문이다.

과학문화 좀비는 건전한 과학문화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한 결과다. 정부의 과학문화예산은 복권기금에서 나온다. ‘희망 사다리’가 없는 서민에게 ‘인생역전’을 위한 유일한 수단처럼 보이는 로또를 팔아 번 돈이다. 과학문화를 진흥시키기 위해 서민에게 로또를 더 많이 사달라고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태계다. 정부의 지원으로 돈을 번 대기업이 출연하여 조성한 정보화촉진기금이 정보문화에 투자되어 정보기술 시장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와 비교해 보라.

왜 과학문화 분야에는 성공한 벤처가 없는 걸까? 정부는 왜 과학문화산업은 육성하지 않고 과학문화사업만 수행하려는 걸까? 과학문화산업은 민간의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과학문화사업은 퇴직 공무원의 일자리를 늘리기 때문일까? 혹시 정부가 스스로 과학문화 좀비를 양성하는 건 아닐까? 서민에게 복권 팔아 모은 돈으로 대학생 봉사활동 하듯 과학문화사업을 벌이면 과학문화를 창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경직된 좀비 생태계에서는 창의재단의 이사장이 바뀌어도, 국립과학관 관장의 얼굴이 달라져도, 아니 담당 부처의 장관이 새로 부임해도 소신껏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제 아무리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다 하더라도 개체가 생태계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을 지원하느냐고 생뚱맞게 핀잔을 주는 공무원에게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권한다. ‘원조가 아프리카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따끔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직접 체험하는 수밖에 없다. 말라리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진 지역에 모기장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인지, 모기장 제조업체를 지원할 것인지 현장에서 판단해 보라.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보문화는 원대한 비전과 사명을 품은 기업들이 적자생존의 생태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다. 건전한 과학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과학문화에 대해 사명감을 가진 벤처들이 우글거리며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예산을 나눠주는 기관의 일자리가 아니라 그 예산으로 더 많은 민간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참, 4월은 과학의 달이지. 좀비들이 활개 칠 때가 된 게지.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아프리카#과학문화사업#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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