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앨버트 푸홀스, 21세기 최고타자를 만든건 우유팩 글러브와 레몬공

LA 에인절스 앨버트 푸홀스는 메이저리그 현역선수 가운데 통산 타율과 장타율이 가장 높은 타자다. 정교함에 파워까지 겸비한 그는 2012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에인절스로 이적한 뒤에도 뛰어난 기량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메이저리그 간판타자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동아닷컴DB

앨버트 푸홀스. 동아닷컴DB

■ LAA 앨버트 푸홀스

어려운 가정환경·美 이민…늦깎이 야구인생
신인드래프트 402번째·6만달러 계약 아픔
2000년 마이너리그 평정 후 ML 신인왕 차지
10년 연속 타율 3할-30홈런-100타점 금자탑

메이저리그에서 현역선수 중 최고의 통산 타율을 지니고 있는 타자는 누구일까. 정답은 LA 에인절스 1루수 앨버트 푸홀스(33)다. 지난해까지 12년간 통산 타율 0.325를 기록했고, 장타율(0.608)도 현역선수 중 최고다. 정교함과 파워를 겸비한 푸홀스는 21세기 최고의 타자로 손색없다.

○고난을 이긴 뚝심의 사나이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푸홀스는 우유팩으로 글러브를 만들고, 레몬을 던지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어머니는 어릴 적 그의 곁을 떠났고, 소프트볼선수였던 아버지는 술 주정뱅이였다. 16세 때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뉴욕으로 이민을 왔지만, 우연히 목격한 식료품 가게에서의 총격사건에 큰 충격을 받은 그의 가족은 친척들이 거주하던 미주리주로 옮겨갔다. 영어가 서툴던 푸홀스는 오로지 야구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었다. 그의 실제 나이가 18세가 넘는다고 확신하던 상대팀 감독들이 정면승부를 피하도록 투수들에게 지시했던 것. 그 결과 무려 55개의 볼넷을 얻었는데, 간혹 스윙할 기회가 오면 매섭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33타수밖에 기록하지 못하고도 홈런을 8개나 때렸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명문대 진학을 포기한 푸홀스는 장학금을 약속한 메이플 우즈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첫 경기에 유격수로 출전한 그는 만루홈런을 때렸고, 혼자서 트리플 플레이를 성공시키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그러나 신입생으로 타율 0.461, 22홈런의 뛰어난 성적을 올린 그의 이름은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13라운드까지 호명되지 않았다. 402번째에서야 그를 지명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제시한 계약금은 고작 1만달러. 자존심이 상한 그는 계약을 거부하고 대학리그에 출전해 48타점을 쓸어 담으며 무언의 시위를 했다. 결국 카디널스는 6만달러로 계약금을 인상한 끝에 입단 도장을 받아냈다.

○거물의 탄생

2000년 싱글A 미드웨스트리그를 평정한 푸홀스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올스타에 선정됐다. 시즌 막판 트리플A 퍼시픽코스트리그로 올라가 멤피스 레드버즈의 우승을 이끌며 포스트시즌 MVP를 차지해 다른 마이너리거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점을 입증시켰고, 이듬해 카디널스 스프링캠프에 초청됐다. 당시 빅리그 최고의 홈런타자 마크 맥과이어가 토니 라루사 감독에게 “푸홀스를 빅리그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감독님 일생의 최대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재능은 남달랐다.

행운도 따랐다. 딱히 마땅한 포지션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주축선수인 보비 보니야의 부상으로 25인 로스터에 합류했다. 개막전부터 주전으로 경기에 나선 푸홀스는 신들린 듯 방망이를 휘둘러 올스타에 뽑히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카디널스 루키가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1955년 루이스 아로요 이후 처음이었다. 그의 루키시즌 성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타율 0.329로 내셔널리그 6위에 올랐고, 37개의 홈런으로 짐 에드몬즈(30개)와 맥과이어(29개)를 제치고 팀 내 1위를 차지하는 한편 130타점을 수확했다. 만장일치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등극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단숨에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푸홀스는 10년 연속 타율 3할-30홈런-100타점의 금자탑을 쌓았다. 타격왕(2003년), 홈런왕(2009·2010년), 타점왕(2010년)을 모두 차지한 그는 올스타 9번, 내셔널리그 MVP 2번, 실버슬러거 6번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스윙이 한결같다!

푸홀스가 꾸준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늘 한결같은 스윙 덕분이다. 우완투수를 상대할 때 32.5온스(약 921g)의 방망이를 드는 반면 좌완투수를 맞아서는 33온스(약 935g)짜리를 사용한다. 이는 좀더 무거운 배트를 써 좌완투수의 몸쪽 공을 지나치게 잡아당기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다. 푸홀스에 대해 카디널스 동료였던 랜스 버크먼은 “늘 한결 같은 스윙을 한다”고 말했고,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대니얼 해빕 기자는 “매우 빠르고 간결한 스윙을 한다”고 묘사했다.

푸홀스의 통산 출루율은 무려 0.414다. 자신이 원하는 공이 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안다는 뜻이다. 수비력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루키시즌 3루수(55경기), 1루수(42경기), 좌익수(39경기), 우익수(39경기)로 고르게 출전했을 만큼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녔다. 2004년부터는 붙박이 1루수로 자리를 잡아 2006년과 2010년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멘탈도 강하다!

흔히 야구를 ‘멘탈 게임’이라 칭한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3년 연속 눈부신 활약을 펼치자 카디널스는 2004년 2월 7년 1억달러의 조건으로 푸홀스와 장기계약을 맺었는데, 2011년에는 1600만달러의 구단 옵션이 걸려 있었다. 10년간 카디널스의 간판스타로 군림한 그는 2011시즌 개막 이전에 새로운 장기계약을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크게 낙담한 그는 시즌 개막 후 첫 30경기에서 타율 0.231, 7홈런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이후 117경기에서 타율 0.316, 30홈런을 기록하며 10.5경기차로 크게 앞서가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따돌리고 카디널스가 와일드카드를 차지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결국 37홈런으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타율 0.299, 99타점으로 11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은 아쉽게 무산됐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들어 푸홀스의 방망이는 더욱 맹위를 떨쳐 대기록 중단의 아쉬움을 달랬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타율 0.350에 이어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선 타율 0.478, 2홈런, 9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은 푸홀스의 원맨쇼였다. 홈런 3방을 포함해 5안타 6타점 4득점으로 16-7 대승을 이끌었다. 2006년에 이어 2번째 우승을 견인한 그는 생애 처음 프리에이전트(FA) 신분을 획득했다.

○에인절스의 간판타자로!

빅리그 최고의 타자를 잡기 위한 치열한 다툼으로 2012년 겨울은 뜨거웠다. 푸홀스는 카디널스에서 은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카디널스는 협상 초반 5년 계약 제시에 그쳤다. 뒤늦게 10년 2억1000만달러로 상향 조정하며 잔류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했다. 마이애미 말린스도 비슷한 조건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최후의 승자는 10년 2억5400만달러를 내건 LA 에인절스였다.

처음으로 아메리칸리그에서 뛰게 된 푸홀스는 2012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에 허덕였다. 4월 한 달 타율 0.217, 4타점에 그쳤고 홈런은 단 1개도 때리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지난해 신인왕을 차지한 마이크 트라우트가 빅리그로 승격되고, 미키 해처 타격코치가 해임되자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5월 16일부터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타율 0.323, 15홈런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초반 부진을 끝내 만회하지 못하고 생애 최저인 타율 0.285로 2년 연속 3할대 타율 달성에 실패했다. 그나마 30홈런과 105타점이 위안이었다. 에인절스도 우승 후보라는 평가와는 달리 89승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3위에 그쳤다.

이제 33세의 푸홀스가 다시 3할대를 치는 모습은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운증후군 증세를 지닌 두 살짜리 딸을 홀로 돌보는 두 살 연상의 이혼녀와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그는 돈독한 신앙심과 뚝심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이자 도미니카공화국의 영웅으로 군림할 듯하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