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새권력 美 오바마 재선]망연자실 공화 “흑인-히스패닉 탓” vs “보수색 흐려진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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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패 충격 속 노선투쟁 격화

올해 미국 대선에서 플로리다 주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승리를 확신했던 유일한 경합 주였다. 개표 결과 롬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49.3% 대 49.9%로 패했다. 롬니는 미국 평균치보다 높은 8.7%의 실업률에 실망한 플로리다 주민들이 자신에게 표를 던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플로리다의 변화하는 인구학적 추이를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었다. 플로리다 인구의 40%에 이르는 흑인과 히스패닉은 경제 상황에 관계없이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워싱턴포스트는 7일 “올 대선은 ‘인구’가 ‘경제’를 누른 선거였다”고 분석했다.


잡힐 듯했던 집권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공화당 내부에서 위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사회 주도층으로 부상한 소수인종, 여성, 젊은층의 표심을 공략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중도파와 ‘공화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강경파의 대결이 팽팽히 맞서면서 당의 미래를 둘러싼 노선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 선거분석가 마이크 머피의 말을 빌려 “공화당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전쟁은 (인구학적) 숫자를 중시하는 ‘수학자’와 당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성직자’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싸움은 ‘수학자’들에게 우세하게 진행되고 있다. 백인 남성층이 소수가 되고 소수인종과 여성이 다수세력이 되는 인구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백인에게 집중한 선거전략을 밀고 나간 것에 대한 반성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흑인의 93%, 히스패닉의 71%는 오바마를 지지했으며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오바마는 롬니에게 11%포인트 차로 앞섰다.

보수적인 폭스뉴스의 유명 앵커 빌 오라일리는 “미국은 이제 더이상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라며 “20년 전만 해도 롬니 같은 기성세대 후보가 오바마에게 압승했겠지만 이번에는 히스패닉과 흑인 대부분은 오바마를 찍었다”고 말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도 7일 “이번 선거가 공화당에 자성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며 쓴소리를 했다.

폴리티코는 7일 “공화당 내부에서 ‘너무 늙고, 백인 중심적이고, 남성 위주적’이라는 자기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인구학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향후 대선에서도 줄줄이 패할 것이라는 위기론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공화당은 1992년 이후 치러진 여섯 번의 대선 중 다섯 번이나 전국 득표수에서 민주당에 밀렸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핵심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노년층의 백인 근로자들은 이민 강력 규제, 낙태 반대, 세금 인상 반대를 고수하며 ‘당의 정체성을 가진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다. 폴리티코는 “‘롬니가 너무 진보적이어서 패했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강경론자들 때문에 공화당은 거의 ‘민란(civil war)’에 직면한 상태”라고 전했다.

공화당의 내분은 이번 대선에서 강경 보수세력인 티파티의 지원을 등에 업은 후보가 대거 탈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화당 예비경선을 통과한 상하원의원 후보들은 대부분 강경 보수 노선으로 무장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소수인종과 여성 유권자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본선 무대에서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디애나 예비경선에서 6선의 중도파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을 누르고 출마했던 리처드 머독 후보는 조 도널리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NYT는 “공화당 내부에 유색인종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성론이 나오고 있지만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의 대부분이 강경 보수 성향인 데다 공화당이 하원은 지켰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궤도 수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한편 공화당 내부에서는 허리케인 샌디 사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재난대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이번 롬니의 패배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공화당#흑인#히스패닉#보수색#노선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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