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권재현]재스민혁명과 월가시위는 쌍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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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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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문화부 차장
권재현 문화부 차장
지난달 폐막한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의 화두는 자본주의의 위기였다.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던 금융자본의 모럴 해저드와 부실 투자가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과 유로존 국가들이 줄줄이 재정위기로 비틀거리고 있다. 여기에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만성적 실업과 심각한 소득불균형으로 월가 점령 시위 같은 반(反)자본주의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세계적 부호 조지 소로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를 해소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위기와 민주주의 위기는 이륜바퀴처럼 이미 동시 진행 중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국가들의 민주적 리더십은 만성적 위기에 시달린 지 오래다. 금융자본의 모럴 해저드를 치유하고 정체된 미국사회에 역동성을 부여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은 좌초 위기에 빠졌다. 유로존 위기의 수렁에 빠진 유럽에서도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의 무능과 도덕불감증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총리 교체 카드를 잇달아 빼들었지만 만성적 위기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은 또 어떤가.

어떤 이들은 지난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발원해 러시아와 중국까지 파급되고 있는 ‘재스민혁명’을 떠올리며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도약’ 아닐까라고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이론에 입각해 이를 바라보면 재스민혁명은 월가 점령 시위의 쌍둥이 격임을 깨닫게 된다.

세계체제이론은 세계가 중심국-반(半)주변국-주변국으로 구성되며 제1차 세계대전 이래 그 중심국은 단 하나, 미국이라는 것이다. 냉전시대에 발표된 이 이론은 냉전의 양극으로 불렸던 소련 역시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반주변국에 불과하다는 일갈로 일대 논쟁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이론이 발표되고 20년이 채 안돼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그 적실성을 입증했다.

월러스틴은 이 이론을 발표한 1974년부터 중심국인 미국의 몰락을 줄기차게 예고해왔다. 몰락의 징후는 주변국에서 먼저 관측된다. 이에 따르면 재스민혁명은 미국의 헤게모니 이념(민주주의)이 주변국을 포섭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 약화로 그 자장(磁場)에서 이탈하며 발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스민혁명이 발생한 국가들의 상당수가 미국의 배후조종 내지 암묵적 동의 아래 독재체제를 유지해왔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따라서 재스민혁명을 친(親)민주, 월가 점령시위를 반(反)자본이란 식으로 도식적으로 구별해 바라보기보다는 세계 중심국으로서 미국의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주변국에서 먼저 발생한 균열(재스민혁명)이 중심국의 심장부까지 강타(월가 점령시위)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제 좀 더 뚜렷해진다. 현재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시다발적 위기는 미국의 위기에서 발원한다. 자 이런 통찰이 한국에는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민주화세력의 적자를 자처했던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산업화세력의 총아 취급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의 실패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국내 위기의 책임을 외부환경으로 전가하자는 말이 아니다. 세상만사 다 미국 때문이라는 철부지 반미론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끼리 이념 다툼으로 아옹다옹하느라 정작 세계사의 큰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개 한번 쳐들어보자는 소리다.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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