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박원순]시민운동 16년 ‘당밖의 남자’… 安風타고 제도권 정치에 일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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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 만에 제도권 정치 뒤흔든 박원순 스토리

인권변호사 출신 시민운동가가 제도권 정치에 본격 등장하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9·6 단일화 선언 이후 줄곧 서울시장 선거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려온 박원순 변호사(55)가 3일 범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면서 시민사회·야당연합과 집권여당 간의 일대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 ‘박원순 펀드’로 시민후보 가능성 입증

사실 박 변호사는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안철수 태풍’으로 상징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비판 담론에선 비켜서 있었다. 안 원장이 누리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업고 시장 출마를 고민할 때 그는 백두대간 종주 중이었고, 산에서 내려온 직후 안 원장과의 단일화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박 변호사가 낮은 대중성 등을 이유로 ‘안철수 바람’을 껴안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시민운동 과정에서 축적한 폭넓은 인맥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반을 둔 선거운동으로 만만찮은 세를 과시했다.

특히 47시간 만에 목표 선거자금인 38억5000만 원을 모은 ‘박원순 펀드’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물론이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도 시민사회 세력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또 ‘경청 투어’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시민과 실생활을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시민들이 목말라하는 ‘소통’이라는 가치를 자신의 정치적 상품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엘리트 코스 밟다 투옥·제명

경남 창녕군 출신인 박 변호사는 중학교 때까지 전기 구경도 못한 시골집에서 살며 읍내까지 왕복 30리를 걸어 등하교했다. 공부를 잘해 서울 경복고 진학을 노렸으나 떨어지고 서울에서 경기고를 목표로 1년간 재수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 ‘희망을 심다’라는 책에서 “재수할 때는 독서실에서 3개월 동안 양말도 안 벗고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전형적인 ‘KS(경기고-서울대) 코스’를 밟던 그는 1975년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 때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자살한 김상진 씨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입학 3개월 만에 제명됐다. 이에 대해 서울대 측은 “당시 사회 분위기상 시위를 주도하거나 참여해 제명을 받는 학생이 많았고, 박 변호사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그는 단국대 사학과로 학교를 옮겼다. 역사학을 공부한 뒤 역사문제에 관심을 가져 나중에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계간 ‘역사비평’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제명된 뒤 고향인 창녕군 장마면사무소에서 방위병으로 1977년 8월 6일부터 8개월간 복무했다. “후사가 없는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적했고, 작은 할아버지(양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부선망독자(아버지가 돌아가신 독자)’로 6개월 보충역 처분을 받았으나 행정착오로 2개월 더 근무했다”는 게 박 변호사 측의 설명이다.

○ 조영래 변호사 충고로 시민운동 투신

그는 1980년 사법시험 22회에 합격해 대구지검 검사로 1년여 근무하다 옷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사형 집행 참관이 싫었다”는 게 이유였다. 박 변호사는 권인숙 성고문사건, 미국문화원 사건 등 1980, 90년대 대표적인 시국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그런 박 변호사는 1995년부터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약하며 사회개혁 분야에 투신했다. 스스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로 꼽는 고 조영래 변호사로부터 “돈 그만 벌고 이젠 눈을 좀 돌려보라”는 충고를 들은 게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2002년부터 올 9월까지는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맡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주력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가 몸담았던 아름다운재단이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 원의 기부금을 받은 게 공개돼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 동안 논란이 됐고 본선에서도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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