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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한민국? 5대 국새, 조선총독부 철자법 따라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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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한민국? 5대 국새, 조선총독부 철자법 따라서야”

동아일보입력 2011-05-11 09:31수정 2011-05-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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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쪽 가운데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대,한,민,국'에 대한 정자체, 위쪽 우측은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1930년 2월) 이후 바뀐 오늘날 종소리 '땡'에 대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 아래는 1459년(세조 5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서문 부분.
"국새를 만드는 데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법을 놔두고 굳이 조선총독부가 제정, 공포한 철자법을 따라서야 되겠습니까."

11일 새로 제작중인 '제5대 국새'의 규정위반 문제를 제기해온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47) 소장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언문철자법 때문에 훈민정음 당시의 글자체인 '땡+ㅎ한+민+귁(大韓民國)'을 '대한민국'으로 읽을 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1930년 2월 '언문철자법'을 만들면서 당시 된소리이던 'ㅅㄱㆍㅅㄷㆍㅅㅂㆍㅅㅈ'을 각각 'ㄲㆍㄸㆍㅃㆍㅆㆍㅉ'으로 쓰도록 강제, 긴소리인 '대~'로 읽어야할 '땡(大)'자가 종을 칠 때의 '땡'과 같은 소리로 읽히게 됐다는 것이다.

받침의 'ㅇ' 역시 발음하지 않는 목구멍 소리인 묵음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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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창제된 '훈민정음(국보70호)'의 규정에 따라 이듬해 완성된 '동국정운(국보71·142호)'을 보면 당시의 'ㄸ', 'ㅎㅎ' 등은 현재처럼 된소리가 아니다. 'ㅎㅎ'은 된소리로 읽을 수도 없다.

1459년(세조5년)에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의 서문에도 '솅종엉젱..(世宗御制..)' 등 동그라미가 쓰였다. '종(宗)'의 받침 이응은 묵음이 아닌 꼭지가 달린 것으로 발음을 한다.

박 소장은 "'대한민국(귁)' 가운데 '대한민'까지의 발음은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표기법이 달라지다보니 '땡한민국'으로 읽는 안타까운 일이 벌이지고 있다"며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은 당시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 1934년 윤치호, 최남선, 지석영 등 지식인 112인은 '정음(正音)지' 제5호에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을 반대한 성명을 냈었다. 일제의 언문철자법이 만들어질 때는 '훈민정음 해례본(1940년 경북 안동)'이 발견되지도 않았었다.

박대종 소장은 "지금 와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대로 어문규정을 고치자는 주장이 아니다"라며 "새롭게 제작되는 국새만이라도 '국새 규정'과 역사성, 정통성 등을 감안해 훈민정음 창제 당시대로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국새의 인문은 대한민국 네 글자로 하되,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는 국새규정(대통령령 제22508호)에 맞춰 제5대 국새 '대한민국'의 글자는 각각 '대(大)→ㆍ땡', '한(韓)→ㅎ한', '민(民)→민', '국(國)→귁'으로 새겨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중국 한나라의 '한(漢)'을 가리키던 표기법이어서 자칫 중국 한나라의 국새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는 설명자료 등을 통해 "국새 규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꼴을 활용해 '대한민국'을 표기한다는 의미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글자를 그대로 표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국새 인문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조선총독부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대전에서 활동 중인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지난해 6월 '임신서기석(보물1411호)'이 한국어식 한문표기가 아니라는 새로운 연구내용을 학회지에 발표해 관심을 끄는 등 한글, 한문 분야에서 독창적 연구 성과를 내오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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