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시스템 선진화]유통구조-소비자 인식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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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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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고기에 돈 더낼 소비자 많아져야 ‘벌집사육’ 사라진다

가축 밀집사육 실태와 개선 방안을 보도한 본보 3월 24일자 A3면(왼쪽)과 25일자 A10면.
가축 밀집사육 실태와 개선 방안을 보도한 본보 3월 24일자 A3면(왼쪽)과 25일자 A10면.
《 최근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을 계기로 국내의 밀집사육 실태가 알려지면서 동물 복지형 농장 및 친환경 축산물에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달 축산 선진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축산업 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축산업을 하려면 적절한 시설을 갖추고 교육을 받아야만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축산인들은 “진정한 ‘축산 개혁’을 위해서는 정부와 농가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친환경 축산물이 설 곳 없는 국내의 ‘가격 중심’ 유통구조와 소비자 인식이 반드시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
“친환경 돼지고기요? 그런 건 없는데….”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이마트 영등포점 정육코너. 친환경 고기를 사고 싶다는 말에 매장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돼지, 닭은 물론이고 쇠고기 역시 딱히 친환경으로 분류된 상품은 없다는 설명이었다. 고기들 앞에 놓인 표지판에는 부위명, 가격, 원산지 표시, 등급, 도축장 이름만 쓰여 있을 뿐, 어느 농장에서 무얼 먹여 어떻게 키웠는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전혀 없었다.

이는 인근의 슈퍼 정육점이나 정육 취급 전문 체인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육 체인점의 한 판매직원은 “고기라는 건 마블링 좋고(고기 안에 지방이 대리석 문양처럼 고르게 퍼져 있고) 싸면 그만”이라며 “값만 비싸지 별것도 없는데 친환경은 왜 찾느냐”며 웃었다. 기자가 돌아본 서울지역 유통매장 대부분에서는 소비자들이 친환경 축산물을 살 방법도, 구별할 정보도 없었다.

○ 친환경 축산물 구입-판매 어려워

축산농장주들이 ‘유통이 변해야 우리도 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들여 키운 만큼 제값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비싸도 안정적으로 물건을 사줄 유통망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 ‘최저가’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유통업계에서 업체들은 축산물 마케팅의 첫 번째 기준으로 ‘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롯데마트는 ‘5000원짜리 치킨’으로, 홈플러스는 ‘1000원짜리 생닭’으로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올 초 삼겹살 500g의 평균 가격이 9500원에 달할 때에도 대형마트들은 “삼겹살은 ‘상시 저가 품목’”이라며 6900원 균일가에 판매했다.

이를 보다 못한 축산농가들은 급기야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병아리 한 마리가 800원인데 닭고기 1000원은 어디서 나온 가격이냐”며 “마트들이 생산비 이하로 미끼상품을 내걸어 정가(定價)가 마치 폭리를 취한 가격인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한다”고 지적했다. 한 양계농장주는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 축산을 해라, 축산업 허가제를 하겠다고 하니 맥만 빠진다”며 “대체 우리가 본전도 못 찾을 친환경 축산업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토로했다.

국내 최초로 농림수산식품부의 ‘환경친화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전남 영광의 ‘청보리 목장’ 유경환 대표는 “나 역시 만약 백화점이라는 고정 바이어가 없었다면 친환경 사육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키운 소들은 모두 ‘청보리 목장 한우’라는 고유 브랜드로 신세계백화점에 납품되는데, 이런 브랜드 자부심과 수익 구조가 없는 상황에서 ‘남들이 소 7마리 키울 땅에 1마리씩만 키우는’ 친환경 사육에 도전하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 유통업계, 친환경 보편화에 부정적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정육코너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고르고 있다. 국내 축산물 시장에 유통되는 친환경 축산물은 극히 일부인 데다 소비자의 인식도 낮고, 이를 구별해내기도 쉽지 않아 축산 선진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정육코너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고르고 있다. 국내 축산물 시장에 유통되는 친환경 축산물은 극히 일부인 데다 소비자의 인식도 낮고, 이를 구별해내기도 쉽지 않아 축산 선진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통업계가 친환경 축산물을 홀대한다는 지적에 대해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이는 국내 축산업계가 친환경 축산물을 보편화할 만큼 성숙하지 않아서”라고 항변했다. 친환경 축산물이 제대로 유통되기 위해서는 △대형마트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물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하고 △친환경 축산물 관리가 꾸준히 제대로 돼야 하며 △이런 제품은 ‘남다른 제품’이라는 것을 알 만큼 소비자 인지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셋 다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대형마트 축산담당 바이어는 “마트들은 농가 단위로 매입 계약을 맺어서는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농가관리 협력사나 브랜드 차원에서 거래한다”며 “이 때문에 친환경 축산농가 한두 곳이 늘어나는 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설령 일부 고기가 친환경 고기이더라도 물량이 적은 경우에는 친환경임을 밝히지 않고 일반 고기와 똑같이 섞어 판다”고도 했다. 이 ‘일부’ 고기를 위해 친환경 마크를 다는 순간 나머지 대다수 고기가 친환경이 아닌 것이 돼 버리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축산물 가운데 유기농 축산물과 무항생제 축산물을 모두 포함한 친환경 축산물 비율은 8%에 불과하다. 이 중 엄격한 의미의 친환경 축산물인 유기농 축산물만 따지면 그 비율은 0.25%에 그치는 실정이다.

○ 지갑 닫는 소비자 태도 바뀌어야

지난해 10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도시에 거주하는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 소비자의 62%가 ‘축산농가의 동물사육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 중 78%는 ‘돈을 더 주고라도 동물 복지형 축산물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쇠고기는 35.5%, 돼지고기는 38%, 닭고기는 41.1%, 우유는 86.1%, 계란은 135.8%나 값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매출 결과는 이와 정반대다. 앞선 조사에서 계란은 ‘비싸도 사겠다’는 의지가 가장 높았던 품목이지만, 실제 이마트의 친환경 계란 매출은 전체 계란 매출의 11.5%에 그치고 있다. 친환경 계란의 판매대 크기가 일반 계란 판매대 크기와 비슷하고, 종류는 더 다양한데도 그렇다. 결국 지갑을 여는 그 순간 소비자들은 다른 무엇보다 가격을 따지고 있는 셈이다.
▼ 친환경 인증 제각각… 소비자는 “헷갈려” ▼

현재 정부는 친환경 축산물 유통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유기농 축산물 인증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 △위해요소 중점관리 우수 축산물(HACCP) 인증 등 각종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인증은 사실상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친환경 축산물과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소비자 인지도가 극히 낮고, 인증 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 취재 중 만난 소비자들은 일부 제품에 붙어 있는 각 인증의 의미와 차이점을 잘 알지 못했다. 인증을 받는 게 의무도 아닌 데다 인증 여부가 구매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 보니 판매 업체들도 인증마크를 아예 붙이지 않거나 손톱만 하게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축협 ‘안심한우’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우리 제품은 전부 HACCP 인증을 받은 곳에서 생산하지만 제품에 인증 마크를 붙이지는 않는다”며 “붙여도 소비자들은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증 농가의 관리, 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의 한 축산공무원은 “축산 전담 공무원이 없는 시군이 절반 이상일 정도로 지방의 축산관리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며 “인증 감독은 고사하고 방역 관리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축산농장주도 “인증기관 요원이 현장에 오는 것은 인증 날 때와 인증 유효기간을 갱신할 때뿐”이라며 “나머지 기간에 관리하고 안 하고는 농장주의 ‘양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의 친환경 축산물 인증 농가는 2010년 현재 6265곳으로 5년 전(18곳)보다 348배나 증가했다.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인 것.

정부의 친환경 축산물 인증이 시장에서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체적으로 정부의 기준보다 강화된 친환경 사육 기준을 만들어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전남도로 지난달 ‘동물복지형 친환경 녹색축산 육성 조례안’을 도의회에 상정했다. 축산농가들이 축사 안에 가축 전용 ‘운동장(공간)’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게 골자다. 전남도는 “참여 농가에는 시설 자금을 지원하고 생산물에는 별도의 인증마크를 줄 뿐만 아니라 학교급식 납품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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