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옛 기찻길 하얀 추억을 밟는다··· 아련한 기적소리, 귓가엔 뽀드득 소리

  • Array
  • 입력 2011년 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옛 중앙선 기찻길(팔당역∼운길산역) 걷기

팔당댐 아래 기찻길을 걷는 사람들. 왼쪽 운길산역에서 팔당역 쪽으로 걷는 사람들은 청춘 남녀들이 많고,오른쪽 팔당역에서 운길산역 쪽으로 걷는 사람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남양주=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팔당댐 아래 기찻길을 걷는 사람들. 왼쪽 운길산역에서 팔당역 쪽으로 걷는 사람들은 청춘 남녀들이 많고,오른쪽 팔당역에서 운길산역 쪽으로 걷는 사람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남양주=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남양주 팔당에 가면 옛 중앙선 폐철로가 있다. 경춘선은 복선전철이 됐지만 중앙선 폐철을 걷다보면 경춘선 낭만을 대신 느낄 수 있다. 팔당역~능내역~운길산역 옛 기찻길이 바로 그곳이다. 옛 팔당역사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철로는 이제 녹이 잔뜩 슬었다. 기찻길은 열차 쇠바퀴의 담금질로 젊어진다. 철커덕철커덕 쇠바퀴소리를 들어야 윤이 자르르 흐른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은 한순간에 늙는다. 직장에서 떨려난 사내들의 얼굴이 몇 달 만에 팍삭 늙어버리는 것과 같다. 쇠는 잠시라도 담금질하지 않으면 바스라진다.

팔당역~운길산역까지 기찻길은 약 8.8㎞ 거리이다. 이중 옛 팔당역~능내역까지가 5㎞이다. 노닥거리며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옛 기찻길은 이제 열차대신 사람들이 걷는다. 팔당역에서 운길산역쪽으로 걷는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다. 방한 옷차림도 거의 검은 색 계통이다. 운길산역에서 팔당역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은 젊은 남녀들이 많다. 울긋불긋 옷차림이 싱그럽다.

사랑은 평행선이다. 기찻길이다. 기찻길은 결코 마주보며 가지 않는다. 앞을 보고 나란히 간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딱 그 거리만큼 떨어져 간다. 너무 사랑한다고 두 길이 하나가 되면 기차는 가지 못한다. 싫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도 기차는 달리지 못한다. 철선과 철선 사이의 거리는 절대고독의 공간이다. 사랑은 외로움이다. 외로우니까 사랑이다. 외로우니까 인간이다. 두 발 달린 짐승이다. 눈 덮인 옛 능내역 부근의 기찻길.
사랑은 평행선이다. 기찻길이다. 기찻길은 결코 마주보며 가지 않는다. 앞을 보고 나란히 간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딱 그 거리만큼 떨어져 간다. 너무 사랑한다고 두 길이 하나가 되면 기차는 가지 못한다. 싫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도 기차는 달리지 못한다. 철선과 철선 사이의 거리는 절대고독의 공간이다. 사랑은 외로움이다. 외로우니까 사랑이다. 외로우니까 인간이다. 두 발 달린 짐승이다. 눈 덮인 옛 능내역 부근의 기찻길.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걷는다. 깔깔대거나 수다를 떨며 기찻길을 따라 간다. 마치 시냇가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같다. 소풍가는 동심이다. 문득 어디선가 누렁이가 나타나 터벅터벅 기찻길을 따라 간다. 도대체 쟤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옛 기찻길은 한강을 따라 간다. 산과 강 사이에 기찻길이 있다. 기찻길은 곳곳에 전망 데크가 있다. 그곳에 앉아 한강과 그 너머 첩첩 산줄기 선들을 바라보면 아슴아슴하다. 전망데크에는 반드시 다산의 시구가 2개씩 붙어있다. 다산 시구 따라 기찻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향집은 여기서 8백리/맑거나 비 오거나 같은 거린데/ 맑은 날은 가까운 것만 같고/비 오는 날은 멀게만 느껴지네’ ‘서풍은 집을 지나오고/동풍은 나를 지나가네/불어오는 소리만 들릴 뿐/바람 이는 곳은 보이지 않네’

기찻길 침목은 촘촘하다. 침목 간격대로 걸으면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그렇다고 침목을 하나씩 건너뛰며 걸으면 간격이 멀어 폴짝거려야 한다. 걸음걸이에 맞추려면 침목 한 칸 반이 딱 맞다. 그러려면 어느 한쪽 발은 침목 사이를 내디뎌야 된다. 결국 침목과 발걸음은 엇박자일 수밖에 없다. 불편하다. 마침 쌓인 눈이 침목과 침목 사이의 골을 메워줘 조금 낫다. 가끔 외줄 철길 위를 체조선수처럼 걸어본다. 몸이 갸우뚱거린다.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사는 것도 그럴 것이다. 날마다 외줄을 타며 용케 견뎌왔다.

팔당댐 부근에 봉안터널(250m)이 있다. 터널 안은 은은한 조명이다.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불빛이 밝아진다. 터널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철길 위로 푸른 하늘조각이 반공중에 걸려있다. 사람들 말소리가 우렁우렁하다. 터널 기찻길 침목에는 연인들의 낙서가 눈에 띈다. ‘사랑해 ×××’류가 대부분이다.

기찻길 옆 낭만카페 봉주르는 1982년 대학로에서 문을 열었던 장안의 소문난 카페다. 1992년 지금의 남양주 기찻길 옆으로 이사와 자리를 잡았다. 입구엔 조각가 김원근의 우스꽝스런 조각이 서 있다. 조각상은 보리알갱이 같이 퉁퉁하고 둥글둥글하다. 보면 볼수록 정겹다. 시멘트 조각에 색을 칠한 것이다.

기찻길은 평행이다. 가도 가도 아스라하다. 하얀 눈 더미위에 검붉게 삭은 두 줄기 철길이 뻗쳐나간다. 가물가물 한 점의 소실점이 된다. 매서운 겨울 칼바람이 얼굴을 파고든다. 능내리 연꽃마을의 연못엔 말라비틀어진 연잎사귀만 바스락거린다. 목쉰 바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팔당댐 위쪽 강물은 입을 앙다물고 있다. 팔선녀가 내려와 놀던 자리에 여덟 개의 당(堂)을 지어 놀았다는 팔당(八堂). 이곳 토박이들은 팔당이라 하지 않고 ‘바댕이’라고 부른다. 팔당이 바댕이로 변한 것이다.

팔당댐 위는 꽁꽁 얼어붙었고, 그 아래는 물이 흐른다. 고인 물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얼어붙은 물엔 새들이 살지 못한다. 왜가리, 큰고니, 청둥오리는 댐 아래에서 먹이를 찾는다. 팔당대교를 사이에 두고 하남 검단산과 남양주 예봉산이 마주보고 있다. 산과 산 사이에 강물이 흐른다. 겨울강물은 쫄쫄 흐른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착한일만 좋아하다 욕만 먹어… 이것도 운명일까”▼
다산 정약용 생가-기념관 찾아볼만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이것 또한 운명일까”라며 자신을 탓한 다산 정약용 동상.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이것 또한 운명일까”라며 자신을 탓한 다산 정약용 동상.
남양주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도시이다. 다산은 옛 경춘선 능내역에서 1km 떨어진 마현리(馬峴里)에서 태어났다. 그곳엔 다산과 그의 부인 풍산홍씨(1761~1838)의 합장묘가 있다. 기찻길을 따라 가다가 옛 능내역에서 한강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다산은 열네살인 1776년 봄, 한살 위인 홍씨와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 60주년 기념일인 1836년 봄에 눈을 감았다. 부인 홍씨는 다산이 죽은 지 2년 뒤 78세의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랐다. 다산은 “내가 죽으면 우리 집 뒷동산에 묻고 지사(地師)에게 물어보지 말라”고 유언했다. ‘명당이니 뭐니 그런 것 따지지 말라’고 한 것이다.

기찻길옆 낭만카페 봉주르 입구의 조각상. 김원근작가의 작품으로 보리알갱이처
럼 둥글둥글하고 정겹다. 남양주=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기찻길옆 낭만카페 봉주르 입구의 조각상. 김원근작가의 작품으로 보리알갱이처 럼 둥글둥글하고 정겹다. 남양주=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마재엔 복원된 다산생가(여유당·與猶堂)와 그의 사당 문도사(文度詞), 다산동상, 다산기념관 등이 있다. 여유당은 다산이 서른여덟 때(1800년 봄) 모든 벼슬을 버리고 고향 마재에 은둔하면서 지은 당호이다. ‘여유(與猶)’는 노자의 말에서 따온 것으로 ‘여(與)’는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 조심하라’는 뜻이다. ‘유(猶)’는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살얼음 건너듯 모든 것을 살피고 조심하면서 살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다.

다산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산이 낙향한 그해 여름에 정조임금이 죽었다. 다산의 유력한 후원자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다산은 그 이듬해(1801년 2월) 하옥돼 기나긴 귀양살이를 시작했다. 다산은 고백한다.

2005년 4월1일 문을 닫은 옛 능내역.
2005년 4월1일 문을 닫은 옛 능내역.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가 없다.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가려서 할 줄을 모른다. 정에 끌려서 의심도 아니 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맘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두지를 못한다.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두지 못한다.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 또한 운명일까.”


능내역은 2005년 4월1일부터 폐쇄됐다. 옛 중앙선에 기차가 다닐 때도 문 닫은 지 오래였던 것이다. 대합실 문은 꼭 잠겨있다. 유리창너머로 열차시간이 적힌 안내판만이 쓸쓸하게 걸려있다. 유리창엔 마지막 안내문이 아직까지 붙어있다. ‘출입통제-2005년 4월1일부터 능내역이 무배치간이역(무인역)으로 개편되오니 대합실(맞이방) 출입문을 통제하며 기존 통로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능내역장’

▼기찻길 입구=팔당역이나 운길산역이나 옛 기찻길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팔당역에서는 옛 팔당역사 쪽으로 2km쯤 더 올라가야 한다. 팔당역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지난 조개울에서 예봉산장 길을 따라가다보면 무인철도 건널목이 나타난다. 바로 그곳이 출발점이다. 그냥 길을 따라 옛 팔당역사쪽으로 쭉 올라가도 된다. 가다 보면 왼쪽에 동태음식전문점 와카리와 카페 티나세가 있는데 그 뒤쪽이 기찻길 시작점이다. 도로 벽에 ‘추억의 능내기 찻길산책’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운길산역에서는 장어집이 있는 한강(진중삼거리) 쪽으로 내려와 길을 타고 500m쯤 가다보면 오른쪽에 끊어진 기찻길이 보인다.

▼교통

△중앙선 전철=용산∼이촌∼옥수∼왕십리∼청량리∼회기∼구리∼도농∼양정∼덕소∼도심∼팔당∼운길산. 팔당역이나 운길산역에서 내려 반대방향으로 가면 된다.

▼먹을거리=봉안터널 아래 보리밥집 시골밥상(031-576-8355). 팔당촌두부집(031-576-4110). 페치카에 몸을 녹이고, 항아리수제비, 고추장삼겹살, 쌈밥, 산채비빔밥, 해물파전, 커피 막걸리 등을 맛볼 수 있는 카페 봉주르(031-576-7711).

▼주변 볼거리

△주필거미박물관=김주필박사가 2004년 설립. 거미표본 5000여 종이 있으며 살아있는 거미와 곤충표본 화석 등을 볼 수 있다. 031-576-7908.

△우석헌자연사박물 관=광물 암석 화석 공룡 등 다양한 전시물. 031-572-9555.

△남양주역사박물관=팔당에 있음. 봉선사대종 문양, 현판 탁본, 석기, 토기, 생활용품 등 유물 전시. 031-576-0558.

△몽골문화촌=몽골식 가옥 겔, 몽골음식, 몽골 전통악기, 장신구, 전통의복, 춤, 노래 등 체험. 031-590-2793.

△들꽃식물원=몽골문 화촌 앞 소재. 31개 테마의 야생화 눈길. 031-559-9380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