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라고 하면 경계부터…일감 끊기고 신변위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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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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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침몰-‘황장엽 암살조’에 새터민들 속앓이
뉴스 나올때마다 고개 못들어…공연단 예약취소-낯선 전화
“간첩의심 채용거부” 제보도…“北 가족은…” 생사확인 시름


“요즘 일거리가 너무 없어요. 탈북자라고 말하면 일단 경계부터 하니까….”

북한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성악가수로 활동하다 2001년 북한을 탈출해 2004년 7월 입국한 김영운(가명·34) 씨는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프리랜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요즘 일손을 놓은 지 오래다. 김 씨는 “다른 탈북자들과 공연단을 만들어 지방공연을 다녔는데 취소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며 “때가 때이니만큼 탈북자들의 공연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북한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탈북자 위장 간첩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탈북자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일감을 잃거나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는 등 불안감에 떨고 있는 탈북자가 늘고 있는 것. 북한 개입 가능성이 큰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탈북자들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게 된 것도 가뜩이나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새터민평양민족예술단 김세용(가명·50) 씨도 요즘 눈가에 주름이 늘었다. 최근 예정됐던 9개 공연 중 7개가 취소됐기 때문. 김 씨는 “천안함 침몰 사건 때문에 지자체 행사가 많이 취소돼 다른 공연단들도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남파 간첩 사건까지 터졌으니 탈북자들의 공연을 보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또 “다수의 선량한 탈북자들이 오해를 사거나 의심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탈북자 위장 간첩 사건이 터지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 그는 “요즘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이상한 전화가 많이 와 불안하다”며 “경찰도 이런 전화가 오면 각별히 주의하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NK지식인연대 등 탈북자 관련 단체에는 “조선소 채용이 예정돼 있었는데 설계도 유출 등의 간첩 행위가 의심스러워 채용을 거부당했다”는 등의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식당일을 하는 탈북자 송순영(가명·43·여) 씨도 요즘 고개를 숙이는 일이 잦다. 손님 대부분이 천안함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북한 소행인 것 같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송 씨는 “‘괜히 우리 때문에 저러시는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들어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동료 직원들도 자신을 두고 수군덕대는 것 같아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지도 못한다. 송 씨는 또 요즘 밤길을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 탈북자들 사이에서 “탈북자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 밤에는 가급적 혼자 다니지 말자”는 얘기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익숙한 길이었는데도 막상 혼자 다니려니 무서워 남편이 날마다 데리러 오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가자 북한에 남기고 온 가족들이 간첩으로 동원될까 걱정하는 탈북자들도 늘고 있다. NK지식인연대의 관계자는 “탈북자 가족들을 협박해 간첩으로 내려 보낼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있다”며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탈북자들이 최근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영환 북한인권시민연합 조사연구팀장(30)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가 2만 명이나 되고,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국내 정착 시간이 짧고, 북한에 남겨둔 가족이 많을수록 불안감을 느끼는 정도가 크다”고 설명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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