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베를린 장벽 붕괴 20돌에 생각하는 남북통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1989년 오늘 동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 주민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서독으로 넘어갔다. 오랜 세월 무단 월경하는 동독 주민을 향해 총을 쏘던 경비병들은 총부리를 내려놓았다. 동서독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유럽 각국의 ‘민주화 도미노’로 이어졌고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정점에 도달했다.

냉전이 낳은 분단의 고통을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여태껏 짊어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남다른 상념에 젖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왜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는가. 과연 남북한 통일은 가능한가. 그것은 언제인가.

베를린 장벽 붕괴와 그 1년 뒤의 통일 이후 독일은 깊고도 컸던 분단의 상처를 지속적으로 치유하고 있다. 독일 할레경제연구소(IWH)는 구동독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91년 구서독 지역의 33%에 불과했으나 현재 70%로 격차를 좁혔고 10년 뒤에는 8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독 이후 구동독 지역 재건을 위해 1조3000억 유로(약 2260조 원)를 투입했지만 분단이 지속됐을 경우에 대신 치러야 할 기회비용에 비하면 훨씬 가치 있는 투자로 평가된다.

동서독 간 인적교류와 협력의 확대가 통일의 발판이 됐다. 통일 전까지 500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편지 교환과 전화 통화가 허용됐고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를 시청하면서 공감대를 넓혔다. 서독과의 교류는 동독 주민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안타깝게도 한반도 남북의 통일을 둘러싼 환경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3대 세습을 꾀하며 핵무장 카드로 세계와 대결하고 있다. 2400만 북한 주민은 해마다 굶주려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처참한 신세다. 1960년대만 해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남한을 웃돌았지만 지금은 지옥과 천국을 연상시킬 정도로 역전됐다.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는 통독 과정에 3대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첫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이고, 둘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과 미독(美獨)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프랑스 등 이웃과 동반자가 되는 통일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이었다. 우리에게도 나침판이 될 수 있는 원칙이다. 우리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라는 대원칙에서 한 치도 비켜갈 수 없다. 무조건적인 통일지상주의는 배격돼야 한다.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려면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을 안심시켜 협력을 받아내는 외교적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구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독일에서 대변동을 일으킨 것처럼 남북통일은 중국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통일은 점진적으로 다가올 수도, 갑자기 닥칠 수도 있다. 어느 방식이더라도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통일을 맞을 준비를 치밀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로타어 데메지에르는 “북한이 갑작스러운 붕괴를 맞을 경우 한국은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한국이 탈북자 급증을 막기 위해 새로운 장벽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북의 이질화(異質化)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대응책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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