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칼럼]‘중도 강화와 親서민’에도 공짜는 없다

  • 입력 2009년 7월 30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中道) 강화, 친(親)서민’을 띄워 민주당을 비롯한 반대세력한테서 이슈의 선수(先手)를 빼앗은 형국이다. 민주당은 ‘강부자 정권’ 같은 낙인찍기로 MB 정부를 흔드는 데 재미를 봐왔다. 하지만 대통령이 ‘중도와 서민’ 카드를 다각적으로 들고 나오자 민주당은 “사기극이다”고 외치면서도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정치는 바둑의 패(覇)싸움과 닮은 데가 있다. 3개월 전, 한나라당의 4·29 재선거 참패는 민주당에 반사적 여유를 안겨주었다. MB 정부와 한나라당은 쇄신 논란에 휩싸였고, 그 건너편에서 민주당은 ‘뉴민주당 플랜’ 시안을 5월 17일 발표했다.

‘민주당 현대화의 길’을 표방한 이 플랜은 정세균 대표의 위임을 받은 김효석 뉴민주당비전위원장 등이 당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성안한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중도개혁주의를 현대화하는 것이 뉴민주당의 길”이라며 “세계화와 지식정보사회라는 시대의 급변에 대응해 정책, 전략, 조직을 모두 현대화하고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의 낡은 이분법을 뛰어넘는 창조적 융합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다시 수권정당의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방향 제시였다.

그러나 당내 노선갈등이 불거지고 “한나라당 2중대 하겠다는 거냐”는 내부 비난까지 터져 나왔다. 그러던 중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정국이 전개되면서 뉴민주당 플랜은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버렸다.

경쟁 회피 정책으론 民生못 살려

민주당을 비롯한 반(反)정권세력의 정치공세에 시달리던 청와대가 지난달 뉴민주당 플랜을 연상케 하는 중도·친서민 어젠다를 회심의 대응 카드로 꺼낸 것은 역설적이다. 민주당은 현 정권을 ‘부자 정권’이라고만 했지, 자신들이 서민정당 간판에 걸맞은 대안을 내놓는 데는 무능했다. 그 와중에 ‘근원적 활로’를 고민하던 MB 정부에 이념지형의 중원(中原)을 선점당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물론 MB 정권이 미소 짓기는 이르다. 노무현 정권 때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지금의 민주당도 정치의 최종적 결과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국정의 결과가 나쁘면 설혹 야당의 방해 때문이라 하더라도 거의 모든 책임을 집권 측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정부의 새로운 정책도, 인사(人事)도 여전히 언제 꺼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다.

서민대책, 민생대책이란 것도 국민 전체를 볼 때 공짜는 없다. 사교육비 억제가 교육정책의 최대목표가 돼버린 감이 있는데, 이것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면 사교육비 앙등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시제도 등에서 학력(學力) 변별력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하는 정책을 쓴다면 이는 국가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많은 아이들의 장래도 망칠 것이다. 경쟁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고서도 인적 자원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은 허구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수출 중심 경제성장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내수 기반 확충이 강조되는데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산업 육성’은 내수 시장을 키우고, 외국으로 나갈 돈을 국내로 되돌리며, 일자리도 많이 만들 수 있는 핵심 방안이다. 그리고 이런 산업으로는 의료, 교육 및 보육, 관광 등이 꼽힌다.

하지만 ‘평등, 형평, 위화감, 부자와 서민’ 같은 이념적이거나 갈등지향적인 인식이 이런 신성장동력의 창출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 숙제야말로 좌우 이념의 잣대를 넘어서서 대통령이 강조한 중도실용 차원에서 풀어야 할 일이지만 정부 안에서조차 정책 컨센서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서민과 약자를 위하는 길은 이들에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을 주는 데 있다. 경쟁원리 자체를 왜곡하거나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는 어떤 정부도 이들의 밝은 장래를 보장할 수 없다.

포퓰리즘의 피해자는 결국 弱者

크고 강한 쪽을 눌러 작고 약한 쪽의 마음을 사려는 ‘수(數)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으로는 나라 전체의 파이를 키우기 어렵고, 오히려 지속 가능한 발전동력을 약화시키기 쉽다. 그 결과로 더 고통 받을 쪽이 누군지는 자명하다.

이 정부는 출범 때 ‘선진 일류국가’를 국가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구체화할 5대 국정지표에 ‘활기찬 시장경제’와 ‘인재대국’을 포함시켰다. 요즘의 여러 정책 행보가 과연 이에 부합하는지, 청와대부터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이 강조한 ‘근원적 처방’은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안에서 나와야 성공할 수 있고, 국민과 정부가 함께 웃을 수 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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