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점 부자고객 따라 헤쳐모여

  • 입력 2009년 7월 27일 20시 52분


서울 종로구 충신시장 인근에 살고 있는 주부 김부진 씨(55·여)는 최근 은행을 찾는 빈도가 크게 줄었다. 집 근처에 있던 은행 지점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지점을 가려면 북새통인 시장 길을 가로질러야한다. 시장 상인들 역시 불편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김 씨는 "오랫동안 이용했던 은행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여간 불편하게 아니다"며 "다른 지점은 너무 멀어 주거래 은행까지 바꿨다"고 말했다.

지점 구조조정은 올 초 은행가의 화두 중 하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실적악화로 어려움을 겪은 은행들이 경비절감을 위해 수익성이 낮은 지점들을 폐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행 지점 폐쇄가 강북 지역에 집중됐다는 것. 반면 강남지역과 경기도내 신도시엔 지점들이 대거 신설되면서 경제 위기 이후 은행들의 강남 집중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은행 지점 부자고객 따라 헤쳐모여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개 대형 시중은행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 은행은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모두 167개의 지점을 폐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점이 폐쇄된 지역은 종로구, 중구 등 대표적인 구(舊)상업지구다. 중구가 11곳으로 가장 많이 폐쇄됐고 종로구가 7곳, 영등포구가 5곳으로 뒤를 이었다. 과거 이 지역 지점들은 문만 열면 단기간에 수익을 냈던 지역이다. 하지만 이제는 장사가 되지 않아 은행 지점에 거액의 임대료 부담만 떠안기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종로구에 위치한 세운상가 등 과거 전성기를 누렸던 상가들이 철거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반면 강남지역의 경우 송파구가 14곳, 강남구 8곳, 서초구 6곳으로 신설 지점이 크게 늘었다. 고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는 분당구가 위치한 성남시 역시 9개의 신설 지점이 들어섰다.

특히 송파구에선 재건축아파트가 많은 잠실동, 신천동과 신도시건설 지역인 경기 화성시, 김포시 등에 신설 지점이 많이 들어섰다. 이 때문에 재건축아파트와 신도시 부동산에 투자한 고소득층을 겨냥해 은행 지점들이 본격적인 '헤쳐모여'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익에 따라 지점의 폐쇄와 신설이 결정되는 분위기가 과거에 비해 강해졌다"며 "특히 송파구의 경우 재건축으로 고소득층인 주택 실소유주가 대거 입주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부분의 은행이 점포 신설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선점과 프라이빗뱅킹(PB) 경쟁도 치열

강남과 신도시 지역에 영업력이 집중되면서 신설 지점을 내기 위한 은행들의 정보전은 첩보활동을 방불케 할 정도다. 기업 고객이나 부자 고객들이 몰리는 목 좋은 지역을 선점하기 위해 은행들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는 것. 은행들은 전담 직원을 두고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부터 해당 지역의 기업 또는 상가 입주 현황은 파악하는 것은 물론 경쟁 은행 지점 개설 움직임까지 치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은행들은 또 강남지역의 거액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PB센터도 강화하고 있다. PB센터 확장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은행은 우리은행이다. 지난해까지는 전문PB센터로 '투체어스 강남센터'만 운영해왔던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서초동, 대치동에 PB센터 3곳을 신설했다. '골드클럽'라는 브랜드로 PB에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하나은행도 지난해 12월 강남구 도곡동에 새로운 PB센터를 개설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PB팀장은 "강북 등 다른 지역과 달리강남에 PB센터를 신설하면 잠재력이 큰 고소득층을 선점하는 장점이 있다"며 "당장 수익나지 않더라도 PB센터에 대한 은행들의 투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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