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재완]듣는 배려 있어야 말하는 자유도 있다

  • 입력 2009년 7월 22일 02시 55분


거리를 걷다 보면 큰 간판이 눈에 거슬릴 때가 많다. 가게마다 입구 위 간판이 위압적이다. 유리창마다 기둥마다 상호를 써 붙인 가게도 흔히 볼 수 있다. 간판은 저마다 “우리 집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치지만 행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점점 커지는 간판은 이제 의사전달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기 의사의 강요일 뿐이다. 보는 사람,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고 주장하는 자의 목소리만 남았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학 교정에 시도 때도 없이 학생 몇몇이 모여 확성기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 부른다. 그 옆에서 공부하는 학생에 대한 배려는 없다. 광장에 나가면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집회가 열리는 곳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북소리, 노랫소리는 귀를 멍하게 만든다. “나의 억울한 사정을 당신은 들어야 한다”는 강요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이를 거부하면 불통이라고 강변한다.

현 정부 들어 언론의 자유가 탄압받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는 물론이고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에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 진단은 틀렸다. 언론의 자유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자유라면 이런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 내 주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이를 관철하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을 뿐이다.

자기주장 강요하는 사회

언론의 자유가 억압된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메이저 신문에 대한 광고불매 운동, 미네르바 사건, MBC PD수첩 기소, 서울광장의 사용 금지 등이다. 미네르바 사건은 피해자 없는 의견 표명을 공익을 내세워 형사처벌하려 했다는 점에서 탄압이란 평가가 나올 여지가 있다. 나머지 사건들은 자기주장을 관철하고자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 게 문제된 것이다. 여기서는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 광고불매 운동은 자기가 보기 싫은 신문을 다른 사람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광고주에게 강압을 가한 혐의로, MBC PD수첩은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일부러 보도하고 그로 인해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광장에서 집회의 자유가 일시 제한된 것도 사람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관을 폭행하고 인근 주민과 상인의 평온을 침해한 데 원인이 있다.

미디어법 개정이 난항을 겪는 것도 그 내막을 살펴보면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못함에 분노하는 세력의 목소리가 커서 그렇다. 한나라당이 개정안을 처음 제출한 때가 작년 12월이다.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반대론자의 요청에 의해 사회적 논의기구인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만들어져 20명의 위원이 110일을 논의했다. 당초 개정안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선진국의 경험을 토대로 합리적으로 마련된 것이지만 미디어위원회는 여론 독과점에 대한 국민 우려가 큰 것을 확인하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신문과 지상파 방송의 겸영 금지를 2012년 말까지 연장하고, 방송시장의 독과점을 방지하고자 시청점유율 상한제의 도입을 제안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안을 받아들였다. 나아가 2012년 말까지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의 경영권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내용이 바뀌었지만 반대론자는 지난겨울 주장하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7개월이 지난 지금도 ‘날치기’라고 주장한다. 2012년 말이면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 다음이어서 현 정부는 MBC나 KBS2를 신문이나 대기업에 넘길 수 없음이 분명한데도 ‘방송 장악’이라는 구호가 난무한다.

마음 열린 생각, 입으로 하는 생각

자기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 진리이고, 자기 행동이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진리의 절대성을 믿지 않는다. 진리는 자유로운 토론을 통하여 발견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의무를 수반한다. 이러한 덕목은 공동체 사회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에게 당연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대 총장을 지내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불명예 퇴임한 로런스 서머스 교수를 경제자문위원장으로 임명하던 작년 말, 두 사람은 자주 비교되었다. 하버드대라는 학연 말고도 신념이 강하고, 토론을 좋아하는 점이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한 대학교수는 “오바마는 마음을 열고 생각하지만 서머스는 입을 열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자기 말 하느라 바쁜 사람, 또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갈등만 있고, 발전이 없다.

문재완 객원논설위원·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oonjae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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