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산수화’…석철주 ‘크로스 오버’ 작품전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 사진 제공 학고재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 사진 제공 학고재
화가의 깡마른 몸 어디에 이렇듯 폭발적 에너지가 숨어있는 것일까.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를 가득 채운 화가 석철주 씨(59·추계예대 교수)의 열정적 작업을 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두 전시장에는 이상의 풍경(본관)과 현실의 풍경(신관)을 담은 대작이 걸려있다. 한데 작품의 소재와 표현기법도 다채롭다. 본관에는 길이 9m의 ‘신몽유도원도’를 비롯해 정선의 ‘박연폭포’, 전기의 ‘매화초옥도’ 등 옛 그림을 색다르게 재해석한 150∼300호 작품이 즐비하다. 거듭 칠한 바탕색을 물로 지우는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들이다. 잡초와 백자를 형상화한 ‘자연의 노래’와 ‘도자기’ 연작을 선보인 신관의 작업은 크레파스 긁어내기 작업처럼 표면을 긁어내 제작했다.

“작가라면 일단 작업량이 많아야 한다. 좋고 나쁨은 그 뒤의 얘기다. 그래서 수업시간만 빼고 장흥 작업실에 틀어박혀 날마다 하루 10시간 넘게 작업한다. 서서 작업하는 바람에 연골은 다 망가지고, 양쪽 어깨와 손목에도 무리가 왔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얘기, 보여줄 게 너무 많아 멈출 수가 없다.”

화단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 같은 진지함과 더불어 한국화의 현대적 실험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 그는 16세 때 전통 산수화의 거장인 청전 이상범에게 그림을 배웠으나 지금은 화선지와 먹을 떠나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채색과 수묵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볼 수 있다.

“서양재료를 쓰지만 내가 담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다. 전통 산수의 다시점적 시각, 미점법 등을 되살린 내 그림에는 덧칠이나 수정이 용납되지 않는다. 전통 기법은 답습하지 않지만 전통의 정신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난 한국화가다.”

시장 사람들 등 현실적 소재에서 옹기와 식물이미지를 거쳐 한국의 산하를 담은 ‘신몽유도원도’를 내놓은 작가. 작품은 전통산수지만 기법은 현대적이다.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물로 지움으로써 지운 형태가 드러나게 하는 점에서 역설의 미학이 돋보인다.

그는 ‘매화초옥도’에서 매화향기 그윽한 산중턱 집에 홀로 앉은 선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속세와 인연을 멀리하고 수행하는 선비의 정신을 사랑한다.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나의 길을 가겠다.”

한국화 앞에 닥친 혼돈의 상황 속에서 예순을 앞둔 화가의 도전이 값진 이유다. 8월 20일까지(8월 1∼10일 휴관). 02-720-1524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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