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발주 100조… “공사 따고보자” 홍역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6분


경제자유구역-2014 아시아경기-지하철 2호선… 대규모 건설사업 줄잇는 인천

일부 시의원 이권 압력… 공무원 수뢰 적발 잇달아
서울지역 건설업체들 주소 이전해 편법 수주도

인천시가 발주한 대형 건설공사를 수주한 A 건설사의 담당 임원은 최근 인천시의회 B 의원의 요청으로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다. 오래전 지인이 소개해 준 B 의원은 이날 평소 인천시 고위공무원들과의 친분, 자신의 인맥 등에 대해 한참 자랑을 했다. 자리가 끝나갈 무렵 B 의원은 이 임원에게 부탁을 했다. 친척이 인천에서 전문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게 요지였다. 그는 “협력업체로 등록하면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한 뒤 더 큰 고민이 생겼다. B 의원이 부탁한 업체의 공사실적이나 기업신용평가 등이 기준에 미달됐기 때문이다. 그는 “공사를 원만하게 끝내려면 시는 물론이고 시의회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대형 건설사들, 너도 나도 ‘인천으로’

경제자유구역 개발을 포함한 대규모 건설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인천에서는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2014년까지 인천에서 사업해서 돈 못 벌면 바보’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19일 인천시에 따르면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는 2014년까지 경제자유구역 등 각종 도시개발사업과 시가지정비사업, 지하철 2호선 건설공사, 경기장 건설사업 등이 잇따라 발주된다. 올해 발주되는 건설사업만 9조5000억여 원에 이르고, 2010년 이후에는 무려 72조 원이 넘는다. 인천지역 건설업계는 내년부터 5년간 지역발전 투자비가 1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일부 건설회사는 정부나 인천시가 발주하는 대규모 공사를 따내기 위해 주소를 인천으로 옮겼다. 지방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행 중인 ‘지역의무 공동도급제’에 편승하려는 것이다. 주소만 이전한 일부 건설사가 공사를 수주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최근 인천시는 몇몇 건설사에 “주소만 인천에 두지 말고 실질적인 본사 기능을 이전해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대형 공사가 잇따라 발주되자 건설사들은 인천시 고위공무원과 시의원 등을 접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각종 건설사업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앞두고는 지역에서 한바탕 난리가 날 정도다. 로비 의혹 등을 차단하기 위해 명단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 도시계획위원을 미리 파악한 뒤 접촉하려고 온갖 인맥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 시의원-공무원 청탁 수뢰 구설수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업 인허가나 수주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의원이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C 의원은 인천시도시개발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과 관련해 공사 간부와 동문이라는 학연을 이용해 자신이 사실상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회사가 하도급 받게 해달라는 압력을 넣어 구설에 올랐다. 또 다른 의원 등 3, 4명도 이런 방법으로 친인척이 운영하는 업체가 건설공사 하도급을 받거나 건설자재 등을 납품한 것으로 알려져 수사기관의 내사를 받고 있다.

건설업체의 로비 대상이 되고 있는 공무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건설업자에게 청탁 대가로 향응이나 골프 접대, 뇌물 등을 받아 챙기는 일이 수두룩하다. 5월 검찰에 구속 기소된 J 씨(41)는 2007년 2월 시장 비서로 근무하며 “송도지식기반정보산업단지 용지공급 대상자로 선정되면 투자금의 2배를 주겠다”고 속여 3억 원을 받는 등 건설업자 2명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4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적발됐다. 또 시 도시계획과장 Y 씨(55·4급)는 건설업자 김모 씨(49)에게 “시가 발주하는 공사를 수주하게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해외에서 수차례에 걸쳐 750만 원 상당의 골프 및 술 접대를 받았다. 그러나 공사를 주지 않자 접대를 문제 삼은 김 씨에게 오히려 접대액의 2배가 넘는 1700만 원을 뜯긴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런 분위기는 인천시 산하 10개 구군에도 퍼져 상당수 공무원이 비리 혐의로 적발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뇌물을 받아 중징계를 받은 인천시 공무원은 11명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경기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올해에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직원 2명이 건설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적발됐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송원 사무처장은 “지자체의 규모를 감안하면 인천 공직자의 비리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특히 인천시가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추진하는 대형 개발사업의 경우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등 폐쇄적이어서 이권에 개입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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