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로 통하는 테스트베드”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미래산업투자잇단‘노크’

기술력-인적자원 매력적

에릭손, 한국서 신기술 개발

외신 부정적 보도 조기진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 에릭손이나 시스코 등 글로벌기업들이 각각 한국에 2조 원 안팎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제약사나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도 한국에 대한 투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외국기업의 투자는 차세대 정보기술(IT),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성장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외국기업들이 한국을 첨단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FDI가 몰리는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올해 2분기(4∼6월) 정부에 신고된 FD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나 늘었다. 최근 동아일보가 주한(駐韓) 외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서도 ‘한국에 대한 FDI를 늘리겠다’고 답한 곳이 65%에 이르렀다. 한국에 대한 FDI가 늘어나는 현상의 심층을 들여다본다.》

#장면 1 호주 태양전지 기업인 다이솔의 게빈 툴럭 회장은 13일 한국을 방문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심혈을 기울인 연구개발(R&D) 작업이 한국에서 첫 결실을 이뤘기 때문. 다이솔이 투자한 한국 법인인 다이솔티모는 이날 실리콘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염료로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연료감응 태양전지’ 생산라인을 구축해 상용화를 위한 시험생산에 들어갔다. 다이솔티모 이성일 부사장은 “다이솔은 한국의 연구인력이 훌륭하고 녹색산업을 키우려는 정부의 정책 의지도 강해 한국 기업과 손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장면 2 지난달 말 KOTRA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글로벌 바이오텍 포럼 2009’를 열었다. 이곳에는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인 존슨앤드존슨(미국)의 밍데 시아 시니어디렉터와 사노피 아벤티스(프랑스)의 아준 오베로이 아태지역 사업개발 담당 부사장, 로슈(스위스)의 프랑크 그람스 글로벌 담당 총책임자 등 굵직한 인사 70여 명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장면 3 “대한민국 정부와 에릭손은 이번 협력 부문과 투자계획에 대해 완벽한 이해와 합의를 했습니다.” 14일 오후 스웨덴 에릭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긴급 보도자료를 한국 언론사에 전달했다. 최근 한국 정부와 에릭손은 이동통신 기술 개발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에릭손이 한국 투자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하자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선 것. 대(對)한국 투자 계획에 영향을 받을까 신경 쓰는 모습이 엿보였다.

한국이 바이오 정보기술(IT) 신재생에너지 등 차세대 성장산업의 테스트베드로 급부상하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한국은 우수 인력이 많고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검증된 투자처’로 꼽히고 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지식경제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각각 자국 기업의 투자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의 투자수익률이 최상위권으로 나타났다.

○ ‘IT 강국’에 관심

에릭손이 현재 80여 명인 한국 내 인력을 향후 1000여 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앞으로 펼쳐질 이동통신 4세대(G) 시장을 두고 에릭손 중심의 롱텀에볼루션(LTE) 진영과 한국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와이브로 진영이 맞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에릭손이 최대의 경쟁상대로 꼽는 한국에 대규모 R&D센터를 세우겠다고 밝힌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발상이다. 에릭손은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최첨단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퀄컴은 무선통신 기술과 관련된 한국 벤처기업 10여 곳을 골라 투자할 예정이다. 2001년 이후 8년 만에 한국에 대한 투자를 재개하는 것. 대개 한국 기업이 투자받을 기업에 가서 기업설명회(IR)를 하는데, 퀄컴은 거꾸로 한국에 와서 ‘역(逆) IR’를 했다. 폴 제이컵스 퀄컴 회장은 “모바일 시장의 선두주자인 한국에서 훌륭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 한국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임상 허브

다국적 제약사들은 한국에서 신약 R&D를 늘려 ‘임상 허브’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사노피 아벤티스는 올해부터 2013년까지 한국에 7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도 R&D 예산을 지난해 300억 원에서 올해 350억 원으로 늘렸다. 특히 이 회사는 한국법인을 항암제 등 3개 부문에서 핵심 임상국가로 선정했다.

제약업계는 한국 의료진이 뛰어난 데다 삼성의료원 등 한국 주요 병원에 전국에서 환자가 운집해 세계적으로 환자 집중도가 크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가 몰린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국내 임상시험 건수는 2006년 108건에서 2007년 148건, 2008년 216건 등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제약사는 해당 국가에서 임상시험을 통해 R&D 가능성을 시험해 본 뒤 결과가 좋으면 본격적으로 자금을 대거 투자하는 패턴을 보인다.

안병희 한국노바티스 상무는 “신약 개발은 10년 정도의 장기간에 걸친 작업이기 때문에 현지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인데 한국은 제약 R&D 기반이 탄탄해 글로벌 제약사가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도 외국인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외국인 직접투자금액 중 녹색성장과 관련된 전기·전자 분야에 대한 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9% 늘었다.

○ 한국에 투자하면 돈 번다

외국 자본이 차세대 성장사업의 실험장으로 한국을 주목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 진출한 미국과 일본, EU 기업들이 이미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투자하면 돈 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말을 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는 한국과 중국, 홍콩, 대만, 인도, 아세안 6개국 등 11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을 조사했다. 2007년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 중 흑자를 낸 기업은 92%로 1위를 차지해 2위인 대만(86.3%)을 크게 앞섰다. 2008년에도 흑자 기업의 비율은 한국이 80%로 2위로 1위인 홍콩(81.3%)과 엇비슷했다.

EU 기업들도 한국에서의 종업원 1인당 매출이 가장 높았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탯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홍콩, 캐나다 등 20개국을 비교한 결과 한국 진출 기업들의 종업원 1인당 매출이 67만 유로로 가장 높았다. 또 미 상무부가 1990∼2006년 자국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세계 투자 수익률보다 월등히 높은 투자수익률을 나타냈다.

정동수 KOTRA 인베스트코리아 단장은 “한국은 차세대 IT 등 미래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큰 데다 기술력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고 인구 규모가 적정해 테스트베드로서도 유리한 면을 지니고 있어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테스트베드

(Test Bed·시험대)

생산이나 마케팅, 제품 반응 등 기업의 경영활동을 미리 검증받기 위해 시험해 보는 무대. 한국은 인력이 우수하고 기술력이 높은 데다 첨단 기술을 일찍 경험하려는 소비자가 많아서 글로벌 기업의 대표적인 테스트베드로 꼽힌다.

▼M&A 노린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늘 듯▼

세계 최대의 국부(國富)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을 비롯한 중동 19개 정부기관과 투자사 관계자로 이뤄진 투자사절단 31명이 지난달 한국을 찾았다. ADIA의 자산운용 규모는 8750억 달러(약 1146조2500억 원). ADIA는 이번에 산업은행과 투자에 대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등 굵직한 기업 매물 지분을 보유해 향후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기업을 사들이거나 기업 지분에 투자하는 인수합병(M&A)형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경기 침체로 국내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기업을 매물로 내놓고 있기 때문. 현재 M&A 시장에는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대우인터내셔널, 현대건설, 동부메탈, 금호생명, 대우건설 등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만 하더라도 M&A형 FDI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4% 증가한 15억5000만 달러나 됐다. 이는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투자비용 감소와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도 선방하는 한국의 잠재력 등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FDI 대국’이 되려면 ‘M&A형 FDI’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M&A형’이 국제적인 FDI 추세지만 한국은 국내에 사업장을 설립하는 ‘그린필드형’ 비중이 더 크다”며 “외국인의 국내 기업 인수 및 투자에 대한 반감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수 지경부 투자정책관은 “M&A형 FDI라고 해서 FDI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나중에 공장을 지어 고용을 창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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