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지난 1년 사이 급증한 시중 단기자금이 슬슬 투기적 양상을 띠고 있어 벌써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한 조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증권시장도 개인투자자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모든 전문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등을 보이면서 과열 조짐이 나타나는 부분도 있다. ‘저금리, 과잉 유동성’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면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실물경제의 회복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자산가격의 폭등이라는 부작용만 남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는 아니다. 우선 12년 전 외환위기 이후 경제 상황을 복기해 보자. 당시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27%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1998년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3%로 1980년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그리고 1998년 경기회복도 빨라 GDP가 무려 9.5%나 성장했다. 또 아시아를 제외한 선진국 경제는 비교적 순탄해 글로벌 수요가 탄탄했다. 그럼에도 1998년과 1999년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5.88%, 0.33%로 나타나 우려할 만한 물가압력은 없었다. 금년 ―3% 내외, 내년 2∼3%대의 성장을 예상하는 한국과 글로벌 경제의 수요 측면을 고려하고 작년과 금년 상반기 M2 증가율이 각각 14.2%, 9.7%인 것을 감안한다면 과잉 유동성으로(사실 과잉 유동성이 아니다) 인한 물가압력은 미미한 수준일 것이다. 또 혹자는 환율 상승에 의한 물가압력도 얘기하지만 1998년 평균 환율이 1400원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부분 역시 그리 설득력이 없다.
한편 정부의 재정적자가 우려되기 때문에 세수 인상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부채가 GDP의 몇 퍼센트를 넘으면 문제가 되는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다. 일본은 현재 ‘순 정부부채’가 GDP의 100%(총 정부부채는 217%)를 넘어섰다. 미국은 60%(총 정부부채는 8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부채는 77.5%이다. 우리는 33%(혹자는 총 부채는 76%라고 주장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로 국가 재정 건전도도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물론 국가부채는 국민의 부채이므로 국가부채가 낮을수록 좋은 것이야 상식이지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현대에서 정부는 일정 규모의 부채를 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경기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다. 물가와 정부부채는 한참이나 ‘후순위’다. 걱정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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