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살인자’ 폭염… 年 300명 이상 숨져

  • 입력 2009년 7월 8일 03시 04분


《지난해 7월 29일 오후 4시 전북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의 한 옥수수밭에서 박모 씨(78·여)가 비스듬히 누운 채 숨져 있는 것을 이웃 오모 씨(65·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폭염주의보가 사흘째 이어진 김제의 이날 낮 최고기온은 35.9도를 기록했다. 젊은 사람도 폭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같은 달 31일 낮 12시 반 충남 천안시 S골프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골프를 치던 최모 씨(37)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이날 천안의 낮 최고기온은 31.6도였다.》

일사병… 열탈진… 탈수증…
온난화로 갈수록 사망 늘어
“군인-건설현장 근로자 등
맞춤형 폭염 예보정보 필요”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다. 7일 국립기상연구소가 1991∼2008년 서울지역의 폭염에 따른 사망자 추이를 분석한 결과, 서울은 하루 최고기온이 32도일 때 일사병, 열탈진, 열경련, 탈수증 등으로 평균 103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32도를 기준으로 3도가 오르면 116명이 숨지고 6도가 오른 38도에 달하면 사망자는 156명까지 늘어났다. 서울 외에 전국적인 폭염 관련 사망자 통계가 매년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각종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연간 300∼500명의 폭염 관련 사망자가 발생한다. 박정임 순천향대 환경보건학전공 교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여름 기온이 지속적으로 치솟아 서울에서만 무더위로 죽는 사람이 2030년대 300∼400명, 2040년대 400∼500명, 2050년대 600명 이상일 것”으로 내다봤다.

날씨가 더워서 병원신세를 지는 환자들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천식환자가 폭염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농사를 짓다가 더운 날씨 때문에 두통과 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건설현장에서 건물을 철거하다 폭염에 따른 탈수, 어지러움, 마비 등을 일으키고 구급차에 실리는 사례도 빈번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열사나 일사 등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5년 6189명에서 지난해 1만882명으로 늘었다. 여름철 폭염으로 쓰러져 119구급대의 신세를 지는 시민들도 같은 기간 458명에서 1080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폭염은 특히 대도시에서 많이 발생한다. 도심의 경우 일사량은 다른 지역과 비슷하지만 건물의 냉난방기와 자동차 배기가스, 아스팔트 지열 등 인공열이 도시를 더욱 달군다. 같은 도심이라 해도 빌딩이 많은 서울의 강남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온도가 1.5도가 더 높을 정도다. 밤에도 도심 지역의 기온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최영진 국립기상연구소 응용기상연구과장은 “1994년 낮 최고기온이 서울의 경우 40도 가까이 올라갔던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01∼2008년 전국의 기상관측 지점 60곳의 평균 열대야 일수는 2.0∼5.7일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주요 도시의 평균 열대야 일수는 서울 7.9일, 부산 9.8일, 대구 16일, 인천 3일, 대전 3.75일, 광주 9.9일로 인천과 대전을 제외하고 전국 평균에 비해 4곳의 평균 열대야 일수는 크게 높았다. 열대야는 하루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이다. 같은 곳에 있다면 노인들이 젊은 사람에 비해 더위에 훨씬 약하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폭염으로 구급차 신세를 진 환자의 40%가 61세 이상의 노인이다.

기상청은 지난해부터 폭염특보제를 시작했고 이와 별도로 날씨처럼 폭염상황을 미리 내다보는 폭염예측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환경·기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폭염 피해를 예방하려면 국가 차원의 재해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는 “폭염은 일종의 재해”라며 “건설현장 근로자와 학생, 군인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한 맞춤형 폭염 예보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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