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소프라노 조수미 “편한 승부는 이제 자존심 상해”

  • 입력 2009년 5월 21일 02시 56분


바리톤 흐보로스톱스키와 듀엣콘서트 여는 소프라노 조수미

‘미조리의 노래’ 등 낯선 레퍼토리 골라

최근 자신 이름 딴 호텔 코스메뉴 내놔

“난 노력파… 자신감과 연습만이 비법”

소프라노 조수미 씨(47)를 1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한적한 곳을 찾아 함께 로비를 가로질러 갔다. 서성이던 시선들이 자그마한 그에게 쏟아졌다. “조수미야, 조수미!” 속삭임도 들려왔다.

그는 동갑내기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와 26일 대구, 28, 30일 서울에서 듀오 콘서트를 연다. 지난해 한국 무대에서 각국 민요와 영화 삽입곡 같은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불렀는데, 이번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고난도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인다. 다니엘 오베르의 오페라 ‘검은 망토’ 중 ‘아름다운 이네스’는 한국 초연이며, 펠리시앵 다비드의 오페라 ‘브라질의 진주’ 중 ‘미조리의 노래’는 14년 만에 다시 부른다. 사뭇 낯선 레퍼토리다.

“워낙 어려워 잘 부르지 않는 곡이죠. 유럽에서도 악보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콜로라투라(장식적 기교적인 노래를 부르는 소프라노)예요. 데뷔 23년차로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건재하며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드리려고 힘든 노래를 골랐어요. 리골레토, 루치아에 나오는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다 알아요. 그런 걸로 승부를 보기엔 이제 자존심 상하니까요.”

청명한 새소리를 흉내내는 ‘미조리의 노래’를 두고 그는 ‘두려운 노래’라고 했다. “미조리는 불멸의 새랍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목소리는 앨범이나 공연 실황을 통해 영원히 남겠지 하는 생각을 해요. 미조리에 내 모습이 비치는 듯해서요.”

그는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은 여유로워졌지만, 원숙함과 완벽에 대한 갈증은 점점 심해진다고 했다. 한때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전화가 걸려오면 화를 냈다. 지금은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일일이 챙긴다.

“나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 행동했던 거죠.(웃음) 대가라는 사람은 다 만나봤지만 공통점은 순수와 배려였어요. 플라시도 도밍고는 청소부 아주머니께 인사하는 걸 빠뜨리지 않았죠. 발성연습 1, 2분 더 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을 더 소중히 생각했어요. 까탈 부리는 음악가는 ‘작은 음악’밖에 못해요.”

그는 “나는 굉장한 노력파”라며 “자신감과 연습이 나만의 비법”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9월 독일에서 한국인 신진 연주자들과 함께 독일 가곡 음반을 녹음하며, 내년에는 미국 캐나다 남미를 순회 공연한다.

일상에서 그는 손수 장을 봐 요리하고 텃밭을 가꾸며 강아지 세 마리의 ‘엄마’로 분주히 산다. 집안일을 하면서는 학창시절 유행했던 팝 ‘나이트 피버’나 ‘하우 디프 이스 유어 러브’를 즐겨 흥얼거린다. 유학 시절부터 다져온 요리 솜씨는 최근 국내 한 호텔에서 ‘디너 위드 수미 조’라는 코스 메뉴를 탄생시켰다. 그가 직접 작성한 레시피와 와인 리스트로 꾸몄다.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도 빠질 수 없다.

“포시즌 샐러드는 여름과 어울리는 화려한 색깔의 야채 당근 오이 토마토로 만들었어요. 머스터드를 곁들인 쌉쌀한 드레싱과 함께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떠오르죠. 어니언 수프는 프랑스판 김치 같은 거라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중 ‘프렌치 캉캉’과 잘 어울린답니다. 초콜릿 무스를 곁들인 커피는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제격이고요.”

이날 조 씨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 씨가 15년 전 만들어 준 연둣빛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번 공연에도 그는 앙드레 김 드레스를 입는다. “매니지먼트사(영국 아스코나스 홀트)에서 값비싼 브랜드의 드레스를 협찬 받아 올 때가 더러 있지만 정중히 거절해요. 대부분의 무대에서 앙드레 김 선생님의 드레스를 입죠. 로마 집의 큰 방 하나가 선생님 옷으로 가득해요.” 26일 오후 7시 반 대구 계명아트센터, 28일 오후 7시 반, 30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7만∼20만 원. 02-3461-0976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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