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완준]문화재 복원보다 중요한 ‘제자리 찾기’

  • 입력 2007년 8월 2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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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지 출입구로 쓰기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건축물이라고만 생각했지, 역사적 문화유산이 연고도 없는 곳에 이렇게 방치돼 있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24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옛 그린파크호텔 터를 찾았을 때 이 터를 소유한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967년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 재건축으로 헐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환구단(사적 157호) 대문은 그렇게 이곳에 남아 있었다. ▶본보 8월 25일자 A11면 참조

화려한 용과 봉황무늬의 막새기와는 여전했지만 기와 위엔 잡초가 무성했다. 대들보는 버스가 드나들다 생긴 듯한 생채기로 속살을 드러냈다. 기둥은 버스 페인트 자국으로 어지러웠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즉위식과 제천의례가 열렸던 역사적 현장인 환구단의 대문은 40년간 쓸쓸히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찾아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환구단 대문의 ‘비극’ 이면에는 6·25전쟁 후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지고 훼손된 문화재들의 서러운 운명이 겹쳐져 있다.

1960년대 서울 시내를 마구 개발하면서 수많은 문화유산 건축물이 헐렸고 이 과정에서 일부는 당시 정재계 고위직 인사들의 사유지로 옮겨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고 아무렇게나 헐고 옮겨도 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셈이다. 이전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아 행방은커녕 옮긴 사실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조선 후기 왕실혼례가 열렸던 안동별궁(현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자리)은 1960년대 원래 자리에서 사라진 뒤 지난해에야 경기 고양시의 한 골프장과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보험회사 연수원에서 각각 일부가 남아 있는 것이 뒤늦게 발견됐다. 덕수궁(사적 124호) 담장은 1960년대 세종로 확장을 이유로 본래 있던 곳에서 후퇴했고 대한문도 1970년 뒤로 물러나야 했다. 이후 아스팔트 도로 포장이 거듭되다 보니 이젠 대한문과 담장이 본래 어디 있었는지 알지 못할 지경이다.

개발이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시되던 시절 후대의 욕심으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본디 자리에서 쫓겨난 문화유산들. 우리 역사 찾기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하루빨리 이들의 제자리를 찾아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윤완준 문화부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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