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 대못질’ ]제1부<1>시리즈를 시작하며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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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 가로막은 벽한나라당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한나라당 의원 5명이 23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들러 1층 브리핑룸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들은 “경찰의 기자실 폐쇄 조치는 법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훈구 기자
‘알 권리’ 가로막은 벽
한나라당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한나라당 의원 5명이 23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들러 1층 브리핑룸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들은 “경찰의 기자실 폐쇄 조치는 법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훈구 기자
▼시리즈를 시작하며▼

‘기자실을 폐쇄해 브리핑룸으로 전환하고 정부 부처 사무실 방문 취재를 제한하며 취재에 응한 공무원은 반드시 상부에 보고하라.’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국정홍보처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내용처럼 보이지만 이는 2003년 3월 14일 이창동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발표한 ‘홍보업무 운영방안’의 주요 골자다. ‘언론에 관한 한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분신’이라고 말했던 이 장관이 대통령의 언론관을 그대로 반영해 만든 ‘언론 옥죄기’의 첫 시도였다.

4년 반이 흐른 지금 이 발언은 고스란히 현실화됐다. 소위 ‘개혁입법’이라는 신문법 제정,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한 비판신문 압박, 언론중재위원회와 법적 소송을 통한 언론계 편 가르기에 맞춰졌던 초기의 반언론정책은 더욱 거칠어져 이젠 기자실에 대못질을 함으로써 언론자유의 본질인 취재와 보도의 자유까지 억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최근의 막무가내식 언론정책은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의 흐름을 주도한다’ ‘언론은 불량식품’ 등 막말을 쏟아내며 언론 흠집내기에 주력해 온 노 대통령식 언론 탄압의 결정판이자 건전한 비판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폐쇄적 언론관’의 극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잘못된 언론정책을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념과 매체에 관계없이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정부 방침에 항거하는 이유는 정권이 공격하는 것처럼 ‘기득권 지키기’가 아니다. 정부의 방침을 수용하거나 방치할 경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편협하고 왜곡된 언론관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각종 부작용 등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기자들 브리핑룸에 몰아넣고 취재현장서 격리▼

《“공보실입니다. A 국장 면담 신청을 하셨다면서요?”

본보 B 기자는 최근 한 경제부처의 A 국장을 만나기 위해 비서에게 전화로 면담 신청을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공보실 직원이 전화를 걸어 왔다.

“무슨 일로 A 국장을 만나려고 하시는 거죠? 면담을 하려면 사전에 공보실을 통해야 합니다.”

B 기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면담 신청을 받은 비서가 바로 공보실에 기자가 A 국장을 만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

▽취재원 접촉 사전 신고=정부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인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벌써 기자의 취재 통로를 제한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정부는 이 방안을 시행하기에 앞서 근거 규정으로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이라는 총리 훈령을 만들었다. 세계에서 언론의 대정부 취재 방식을 ‘명문화’해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 가운데 대표적 독소 조항은 제3장에 규정된 ‘취재 응대’ 조항이다.

훈령은 ‘공무원의 대면(對面) 취재는 브리핑룸이나 지정된 접견실에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기자가 공무원을 사무실에서 만날 경우 취재 목적과 취재원을 사전에 공보실에 신고해야 한다. 훈령은 또 기자와 통화를 하거나 만난 공무원은 사후에 그 사실을 공보실에 통보하도록 규정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정부는 기자가 언제, 누구를, 왜, 얼마 동안 만났는지를 각 부처 공보실을 통해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다. ‘빅 브러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조지 오웰의 ‘1984년식 통제’와 흡사하다. 결국 공무원은 기자 접촉을 기피할 수밖에 없고, 만나더라도 정부 정책에 대한 솔직한 의견이나 문제점을 밝히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기자들이 자유롭게 공무원을 만나 의혹이 제기되는 사안에 대해 충실한 정보를 제공받아 기사화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국민을 대신해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 부정과 비리는 없는지 등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내놓는 ‘걸러진 목소리’만 듣고 기사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된다.

▽기사송고실 통폐합 이유는=최근 외교통상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각 부처는 기자들이 기사 작성과 취재활동을 위해 머물러온 기사송고실을 폐쇄하고 기자들에게 통합 브리핑룸으로 옮기라고 다그치고 있다. 정부는 이 방안의 시행을 위해 훈령에 ‘국정홍보처장은 정부합동청사에 합동브리핑센터를 설치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통합브리핑룸은 현재 서울 과천 대전에 1개씩 있을 뿐이며, 정부 각 부처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을 이곳에서 취재하고 마감시간에 맞춰 신속히 기사를 송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는 통합브리핑룸이 가동되면 기자의 사무실 출입을 막기 위해 방호원 14명을 새로 고용해 통합브리핑룸 입구 등에 배치할 예정이다. 기자들을 통제된 공간에 가둬두고 일선 공무원에 대한 접근취재를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또 서울 정부중앙청사 본관은 물론 국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청, 서울경찰청, 기획예산처 등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업무를 처리하는 각 부처에도 상주기자가 없어지게 된다.

일선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공직자들의 당연한 의무를 거부하려는 독재적 관료적 발상”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밀실행정,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비리 사건, 정부정책의 문제점 등이 각 부처와 검찰 경찰 등의 청사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진을 친 채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피 말리는 취재 활동을 한 기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직접 여론 통제=정부는 이처럼 언론 취재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정책방송인 KTV의 인력 증원 등 관영 매체를 통한 정부 홍보는 극대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정부는 지난주 KTV 인력 등 홍보처 정원을 10%가량 늘리는 직제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관제보도를 더욱 늘려 ‘정보의 생산 → 유통 → 여론 반영’ 과정을 모두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언론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건 옳지 않다”며 “정부는 언론 자유를 신장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만약 개혁할 것이 있다면 먼저 국민, 언론,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듣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盧대통령 언론관은 군주의 언론관”▼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1월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몇몇 기자들이 기자실에 딱 죽치고 앉아 담합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비전 2030에 부응하는 건강투자 전략’을 언론이 국민건강 증진계획이 아니라 ‘출산비용 지원’ ‘대선용 의심’ 등으로 보도한 것과 관련해 비판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며칠 뒤 언론에 유감을 표명하긴 했지만 뒤틀린 언론관이 드러난 셈이다.

언론의 취재 및 보도 과정에 대해 무지를 넘어 왜곡된 대통령의 언론관이 현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인식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 언론계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됐다.

노 대통령은 또 “언론은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니는 불량 상품”이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언론에 대한 건전한 견제와 비판이라기보다는 증오에 가깝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부터 “언론과의 전쟁 선포도 불사해야 한다”며 공격했다. 최근 국정홍보처와 대통령홍보수석실의 몇몇 핵심 간부가 정부 내의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외면한 채 취재를 제한하는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론 인식과 무관치 않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노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선거 기간에 주요 언론에 공격 받았다는 피해의식이 강박관념처럼 남아 있다”며 “오로지 언론을 지배자의 관점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생각하는 군주의 언론관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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