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호모 소비우스…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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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이상운 지음/296쪽·9800원·문이당

“우리는 빠른 속도로 뭔가를 소비하게 되는 회로에 갇혀 있기 때문에 소비할 것이 없거나 속도가 느려지면 미쳐서 난동을 부릴 게 뻔해요. 그런 점에서 나는 소비의 언어를 제공하여 난동의 방어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죠.”

‘빨리 만들고 빨리 유통하고 쓰고 빨리 버리는 시대, 쓰레기 만들기 시합을 하는 듯한 시대’(시인 박용하)다. 이상운(48) 씨의 소설집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는 시니컬한 제목처럼 9편의 단편도 시니컬하다. 우리 사회의 위선과 허위를 꼬집는 데 주목해 온 작가는 이번엔 ‘소비’를 키워드로 삼아 비판에 나선다. 이 씨는 르포 작가 이마립을 화자로 설정해 ‘소비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표제작은 이마립이 장운성이라는 시인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다. 장운성은 별 볼일 없는 시인이었지만 유명 광고인이 된 뒤 시집을 내자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는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를 업으로 삼고 있고, 자신이 쓰는 시도 언어의 소비라고 스스로를 조롱한다. 장운성과 몇 날 며칠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듣던 이마립은 자신이 장운성의 술 상대로 ‘소비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이 찬란한 소비의 시대에는 인간관계마저도 소비로 치환된다는 주제의식을, 작가는 냉소로 가득한 성긴 문체로 전한다.

소비의 미술로 불릴 법한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것도 복사판 그림 아래서 만난 남녀의 시간의 소비를 다룬 ‘로이 리히텐슈타인풍의 여자’, 우연히 만난 대학 후배의 모친 상가에 갔다가, 또 우연히 기이한 관광버스 회사 사장과 만나는 ‘만남의 소비’가 이어지는 ‘시체는 어디에 있나’….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지극한 공허뿐임을 작가는 신랄하면서도 쓸쓸하게 비꼰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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