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립중 보내기’ 입시광풍

  • 입력 2007년 8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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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京都)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생 J(9) 양은 지금이 여름방학이라는 실감이 전혀 안 난다.

J 양은 이틀에 한 번씩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학원에서 국어(일본어)와 수학 수업을 받는다. 오후 시간과 그 나머지도 학원 숙제를 하다 보면 친구들과 놀 시간이 나지 않는다.

사립 중학교 진학이 목표인 J 양이 입시학원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올해 2월 초. 그 전 2개월 동안은 좋은 반에 배정받기 위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공부’를 했다.

J 양의 부모가 유난히 극성스러운 것도 아니다. 일본에서 사립중 진학 희망자의 절반가량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입시 전쟁’에 발을 들여 놓는다.

○ 사립중 보내려 주택적금 깨기도

일본의 사립중 ‘입시 광풍’은 중산층 가정의 살림살이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다음은 도쿄신문이 전하는 맞벌이 회사원 K(46) 씨의 사례.

올봄 맏딸을 도쿄(東京)의 사립중에 진학시킨 K 씨는 아직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K 씨는 2005년 당시 5학년이던 맏딸을 처음 학원에 보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의 생각은 그러나 곧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첫 모의고사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학원 강사는 “학원을 보낸 시기가 너무 늦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급해진 K 씨는 맏딸을 추가로 다른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월 5만 엔, 방학 중 월 15만 엔에 이르는 학원비를 내고 나면 가계부는 언제나 적자였다. K 씨는 결국 내 집 마련을 위해 붓고 있던 적금을 깼다.

그나마 K 씨는 돈을 적게 쓴 편에 속한다.

‘요미우리 위클리’가 사립중 합격생을 둔 학부모 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시를 위해 학원비로만 800만 엔(약 6400만 원)을 쓴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6학년 학급은 붕괴 직전

올해 도쿄 외곽에서 부유층 거주지의 한 초등학교로 전근해 5학년 학급을 맡게 된 교사 M(50) 씨는 아침마다 반 어린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M 씨는 아이들에게 이유를 캐물었다.

매일 오후 10시경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나면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학생은 36명 중 단 2명에 불과했다.

사립학교 진학률이 높은 일부 학교의 6학년 교실은 거의 ‘붕괴 직전’이다. 수험공부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책상을 걷어차거나 화단을 뒤집어 엎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 “학원 공부에 방해되니 숙제를 내지 말라”고 교사에게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 입시 광풍의 주범은 부실 공교육

일본 사립중의 연간 학비는 공립중보다 7배나 비싼 127만 엔 안팎.

그런데도 부유층과 중산층 학부모들이 사립중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유는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학부모들과 사회의 공통된 평가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교육당국이 수업시간 감축과 교육 내용 평이(平易)화를 뼈대로 ‘유토리(여유)’ 교육을 추진한 결과 공립중에 대한 학력 불신이 확산됐다고 입을 모은다.

1991년을 정점으로 매년 줄어들던 사립중 수험생 수가 주5일 수업제도가 전면 실시된 이듬해(2003년)부터 상승 추세로 반전한 것이 단적인 증거다.

올봄 도쿄 등 수도권에서 사립중(일부 공립 포함) 입시를 치른 학생 수는 5만8000여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초등학교 졸업생 수와 비교하면 5명 중 1명이 사립중 입시를 치렀다는 계산이 나온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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