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님, 오늘은 이런 포즈로” 한국형 ‘스핀닥터’ 나오나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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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 24일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 입구.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중학생 시절 그곳에서 많이 팔아봤다며 ‘아이스케키’ 행상을 재연했다. 동행했던 사진기자들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그 사진은 다음 날 많은 신문에 실렸다. 전날 오후 작성된 캠프의 ‘포항 일정안’에는 ‘죽도시장 앞에서 아이스케키를 파는 장면을 연출해도 좋을 듯’이라고 적혀 있었다.

#2 지난달 8일 박근혜 전 대표는 생계형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한 뒤 서울 동대문시장 내 한 상가에서 조카에게 줄 아동복을 샀다. 그는 행사 전 별로 내키지 않아 했지만 참모들은 그 상가를 5차례나 방문해 분(分) 단위로 동선을 짠 뒤 ‘조카 옷 사며 상인들과 대화하기’라는 콘셉트로 박 전 대표를 설득했다. 캠프에서는 “자연스레 상인들의 애환을 접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무르익으면서 각 캠프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후보의 말과 움직임을 마치 희곡의 대사와 지문처럼 정교하게 관리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진영이 일부 도입했던 이 기법은 현재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진영에서 본격 시도되고 있다.

특히 각 캠프는 후보의 정치적 메시지와 이미지 관리를 총괄하는 조직에 핵심 실세를 전진 배치하고 있다.

올해 대선을 계기로 본격적인 ‘한국형 스핀 닥터(Spin Doctor·정치홍보 전문가)’의 출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후보의 모든 것을 매니지먼트 하라”=‘빅2’ 경선 후보는 정치와 미디어의 관계에 밝은 의원과 전문가를 주로 스핀 닥터 인력으로 활용한다. 이 전 시장 측에서는 정두언 기획본부장, 신재민 메시지단장 등이 해당된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 최경환 종합상황실장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언행을 자기 뜻대로 펼치는 데 익숙했던 이 전 시장은 최근 언론에 노출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참모진의 건의를 많이 수용하는 편이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합동연설회 초반에는 원고를 ‘참고’만 했으나 5일 광주 연설회부터는 연설의 90% 이상을 원고대로 소화한다는 것. 그럼에도 일부 참모는 5일 광주 공약 발표회장에서 5·18민주화운동을 ‘5·18 사태’라고 표현하자 “악의는 없었지만 귀 밑으로 총알이 지나가는 기분”이라며 더욱 세심한 관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당 대표 시절보다 훨씬 다양하고 입체적인 행보를 보이는 배경에도 캠프의 스핀 닥터들이 있다.

지난달 10일 강원 원주 치악예술관에서 열린 당원간담회에서 행사 마지막에 박 전 대표가 ‘젊은 그대’를 부른 것도 이들의 영향이다. “‘젊은 그대’를 빨리 부르면 ‘젊은 그네(근혜)’가 된다”는 참모진의 전언에 흔쾌히 마이크를 잡았다는 후문. 최근 합동연설회에서 더욱 강렬해진 표정과 몸짓을 선보이고 있는 것도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이 전 시장을 제쳐야 한다”는 참모진의 건의를 수용한 결과라고 한다.

▽‘정치 쇼’ vs ‘21세기형 선거전’=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가 엇갈린다. ‘미디어 선거’라는 변화된 정치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전략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치 이벤트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스핀 닥터는 미국 영국 등 정치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개념인 만큼 이 같은 현상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여론조사 전문가인 딕 모리스, 선거 컨설턴트인 제임스 카빌 등의 스핀 닥터를 핵심 측근으로 썼고, 최근 퇴임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게도 ‘사실상의 부총리’로 불렸던 앨러스테어 캠벨이라는 홍보 전략가가 있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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