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능 난이도까지 정치권 눈치 보나

  • 입력 2007년 8월 6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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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을 주관하는 정부 산하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의 정강정 원장이 11월 15일 치러지는 올해 수능에 대해 “올해 처음 도입되는 9등급제 수능은 쉽게 출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 수능이 쉬워질 것을 예고한 그의 발언은 입시 방식을 둘러싼 정부와 대학 간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들에 내신 실질반영 비율을 50% 이상으로 할 것을 강요하다가 교수사회가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30% 이상’으로 물러선 바 있다. 고려대는 내신 비율을 18%, 숙명여대는 20%로 정했지만 수능 점수가 높은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내신 1∼4등급의 점수차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정 원장의 ‘쉬운 수능’ 발언은 대학들이 그나마 신뢰하는 수능 난이도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쉬운 수능’은 말을 듣지 않는 대학에 맞서 정부가 ‘평등 입시’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현실적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수능이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뀐 데다 문제까지 쉽게 내면 대학입학 시험으로서의 변별력을 거의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정 원장의 오락가락 행보도 문제다. 그는 3월 “올 수능 난이도는 비교적 어려웠던 지난해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어렵게 출제될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교육부와 대학들의 내신 공방 이후 말을 바꾼 것이다. 그는 교육부 주문에 따라 2004년 ‘EBS 수능 강의’에 나온 내용을 수능 출제에 그대로 반영했다. 교육부와 정치권 눈치를 열심히 본 덕인지 그는 이 정권에서 드물게 연임에 성공했다.

수능 난이도에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열심히 공부한 수험생들이 노력에 따른 합당한 점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수능’은 실력 경쟁이 아닌 ‘실수 덜하기’ 경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못 믿을 내신’에 수능마저 변별력을 상실하면 입시는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상위권 대학들이 내신 1∼4등급의 점수차를 최소화하는 마당에 수능마저 쉽게 출제되면 실수 안 하고 운 좋은 학생들이 성공을 거두는 ‘로또 입시’가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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