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은 ‘소방훈련’…와이어‘뚝’ 학부모 2명 사망 1명 중태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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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원묵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의 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이 끊어진 와이어 부분을 유심히 보고 있다. 1970년대 굴절 소방차가 도입된 이후 와이어가 끊어져 일어난 사고는 처음이다. 연합뉴스
17일 원묵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의 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이 끊어진 와이어 부분을 유심히 보고 있다. 1970년대 굴절 소방차가 도입된 이후 와이어가 끊어져 일어난 사고는 처음이다. 연합뉴스
초등학생 자녀의 어머니들이 소방서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소방 안전 체험학습 현장에서 고가 사다리차에 올라탔다가 어린이들이 보는 앞에서 추락해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17일 오전 11시 40분경 서울 중랑구 묵동 원묵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소방교육을 받던 정모(41·여) 씨와 황모(35·여) 씨가 중랑소방서 소속 고가 사다리차에 올라탔다가 24m 높이에서 고가 사다리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구조대가 흔들려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같이 타고 있던 오모(36·여)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이번 사고로 그동안 서울소방방재본부가 고가 사다리차의 와이어에 대해 종합 점검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내구 연한 규정도 마련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용인대 경호학과 김태환(방재학) 교수는 “일본은 고가 사다리차의 와이어 정밀 검사를 소방연구소에서 정기적으로 하고 문제가 없는 와이어도 일정 시기가 지나면 교체하게 돼 있다”며 “지금까지 와이어 교체 기준과 종합적인 검사가 없었다는 건 한국 소방 당국이 안전 관리에 소홀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아이들 탄 뒤 사고당해=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된 이날 행사에는 원묵초 4학년생 250여 명과 학부모 10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이 5, 6명씩 고가 사다리차에 탑승할 때는 구조대에 소방관이 동승했다.

소방서 측은 2시간가량 한 번에 6명씩 40여 차례 학생들을 구조대에 태웠다. 학부모들 중에서는 자원자를 모집했으며 자원자 3명이 마지막으로 구조대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학부모들이 탔을 때는 소방관이 탑승하지 않았다.

경찰은 “지상에서 고가 사다리차 운전을 담당하는 소방관이 (아이들을 놀래 주려고) 고공에서 구조대를 평소보다 심하게 움직였고, 몇몇 아이가 구조대 난간에서 손을 흔들어도 소방관이 제지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소방관들이 안전교육 절차를 지켰는지 조사하고 있다.

유족들은 “어떻게 안전교육을 받다가 사망할 수 있느냐”며 “소방서가 이렇게 허술하게 해놓고 안전교육을 한다고 사람을 불렀느냐”며 항의했다.

▽와이어, 안전점검 대상에서 빠져=소방본부 김한용 본부장은 “1970년대 고가 사다리차가 한국에 도입된 이후 와이어가 끊어진 것은 처음”이라며 “사다리와 구조대를 연결하는 두께 10cm, 길이 27m의 와이어 중 어느 부분이, 왜 끊어졌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와이어는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붐대의 상하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며 구조대의 무게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최대 3∼4t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인명 구조가 목적인 고가 사다리차의 ‘생명줄’인 셈.

그러나 한국에서는 와이어의 내구연한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연 2회 실시하는 정기차량 점검에서도 와이어의 탄력을 알아보는 정밀 검사는 없다.

소방관들은 매일 육안으로 보이는 50∼60cm 정도의 부분만 확인한다. 드럼 안에 들어 있는 와이어가 어떤 상태인지는 점검하는 규정이 없다.

서울시는 이날 현장 책임자인 중랑소방서장을 18일자로 직위해제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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