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한국을 배워요” 부산 亞공동체학교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코멘트
부산 남구 문현동에 있는 아시아공동체학교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그린 벽화 앞에서 놀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부산 남구 문현동에 있는 아시아공동체학교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그린 벽화 앞에서 놀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반투이퀴엔(16) 양은 부산 남구 문현동 아시아공동체학교의 5학년 반장이다. 지난해 베트남인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와 재혼하면서 부산에 온 투이퀴엔 양은 요즘 하루에 2시간씩 한글 수업을 받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중학교를 졸업해 고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초등학교 과정인 이곳에서 기초한글을 배운다. 투이퀴엔 양은 수첩에 한글 단어를 쓰고 그 옆에다 베트남어 발음을 깨알같이 적어 우리말을 익히고 있었다.

투이퀴엔 양은 “베트남어 동시통역사가 되는 게 꿈”이라며 “베트남에서 온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순대와 어묵을 가장 좋아하는 한국 소녀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 도심 속 국제결혼 가정 아이들의 배움터

아시아공동체학교는 투이퀴엔 양처럼 부산에 거주하는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설립한 민간 주도 대안학교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뒤 러시아와 베트남 네팔 중국 등 4개국의 다문화 가정 자녀 14명이 재학 중이다. 이들과 어울리길 원하는 한국인 자녀 12명도 포함돼 있다.

미인가 학교인 데다 부산 문현동의 100평짜리 상가 건물 2개층을 빌려 쓰는 초라한 형태로 출발했다. 뛰어놀 운동장도 없고 학교 급식도 건물 한쪽의 부엌에서 해결한다. 그래도 한국 문화를 배울 기회가 없어 아쉬움이 컸던 국제결혼 가정에 이 학교는 큰 버팀목이다.

국어 과학 사회 수학 영어 중국어 예체능 등 기초교과목은 물론 태껸, 풍물, 공예, 공동체 회의 등 전통 한국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정규 학교처럼 똑같은 교과과정으로 운영한다.

학생 편의를 위해 해운대구 북구 사하구 동래구 등 부산 각지를 운행하는 통학 차량 2대도 제공한다. 운전은 이철호(45) 교장과 박효석(40) 교사가 직접 맡고 있다.

어머니가 러시아 출신인 임하은(10·4학년) 군은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했는데 이곳에 온 뒤부터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교 생활도 즐겁다”고 말했다.

○ 자원봉사자로 꾸려진 교사진

아시아공동체학교의 교사는 20명. 이 가운데 15명이 자원봉사자로 꾸려졌다.

부산시내 미술, 음악학원 교사와 독서교육 자격증이 있는 가정주부, 대학생들이 요일별로 이곳에서 교육봉사를 한다. 모두 학교의 설립 취지에 공감해 스스로 찾아왔다.

음악 담당 봉사자인 김정숙(50·여·피아노 학원장) 씨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의 배움에 대한 열망을 지켜보면 학원과는 색다른 교육적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1주일에 한 번씩 미술치료 수업을 하는 조경숙(42·여) 씨는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는 한국에서 태어나도 어머니가 한국말을 잘 몰라 그 자녀도 한국말을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일반 학교보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과 급우 간 우애가 더 깊어 가르치는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교사 5명도 자원봉사자나 다름없다. 이 교장이 월급을 반납했고 나머지 교사들의 월급 수준은 30만∼80만 원가량이다.

부산시민 140명이 한 달에 1000∼10만 원씩 내는 후원금과 교육인적자원부 지원금 등 4700여만 원으로 한 해 살림을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학생들에게서는 수업료를 받지 않으며 월 급식비 3만 원만 받고 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