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감사 외유, 청와대만 모르는 민심

  • 입력 2007년 5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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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17일 논란을 빚고 있는 공기업 감사들의 관광성 남미 외유에 대해 “민정수석비서관실 차원에서 엄정 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15일 이 사실이 처음 보도됐을 때 “기획예산처가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며 문제가 있으면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을 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16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청와대가 17일 돌연 강경 대응으로 선회한 배경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사실 관계를 먼저 확인한 것이며, 방침의 변화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형적인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심각성을 일찌감치 깨닫지 못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무엇보다 외유에 나선 21명이 공기업 감사라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 공기업에 들어간 ‘혈세(血稅)’를 엄정히 감시해야 할 감사들이 여행경비로 1인당 800만 원 안팎의 세금을 쓴 데 대해 많은 국민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의 절반 정도가 청와대나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로 청와대에서 임명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특권을 없애고 힘없는 사람 편에 서겠다”고 목청을 높인 현 정권의 ‘공신’들이 기존 특권층의 행태를 답습한 꼴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우기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강변을 과연 누가 납득하겠는가.

문해남 대통령인사관리비서관은 지난해 7월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공기업 감사, 외부에서 와야 제 역할 가능’이란 글에서 “(정치인 출신 공기업 감사들은) 정치인인 만큼 국가와 정부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있고, 정부 운영을 꼭 성공시켜야만 한다는 책임감도 더 강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가 이번 파문인가.

노 대통령은 8일 국무회의에서 “정부 내부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기 말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빗나간’ 행동은 레임덕을 앞당기는 불씨가 된다.

청와대는 사건이 알려진 직후 곧바로 외유에 나간 감사들을 소환하고 엄정 조사를 지시했어야 마땅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또다시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임기 말인데도 민심을 그리 모르는가.

정연욱 정치부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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