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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정구]속눈썹에 매달린 빛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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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정구]속눈썹에 매달린 빛의 정체

입력 2007-05-14 03:00수정 2009-09-2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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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가 알베르 카뮈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의 산문집 ‘결혼여름’에 실린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이런 문장이 있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은 속눈썹 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뿐이다.” 눈이 부시게 작열하는 태양빛이 우리 눈을 어둡게 한다거나, 속눈썹 사이로 무지개 빛깔이 비치는 현상을 경험한 사람은 있겠지만 카뮈처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카뮈의 현란한 미학적 표현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과학적 의미가 숨어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음악을 저장하거나 재생하는 데 사용하는 콤팩트디스크(CD) 표면은 아름다운 무지개 빛깔을 보인다. CD의 표면에는 눈에 안 보일 정도로 가느다란 홈이 파여 있고 이 홈을 따라 데이터를 기록한다.

CD 표면에 무지개가 보이는 이유는 이웃한 여러 개의 홈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동성으로 간섭현상이 나타나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속눈썹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라는 카뮈의 표현은 속눈썹 때문에 생기는 빛의 간섭현상, 즉 빛의 파동성을 느낀다는 의미다.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라는 표현은 빛이 파동이 아니라 알갱이(입자)임을 의미하는가?

자연의 질서는 양파 껍질처럼 여러 겹의 보호막에 싸여 진실을 밝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보이는 것이 진실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는 믿음 때문에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진다는 고대 운동 법칙은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무겁거나 가벼운 추가 같이 낙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지없이 깨어졌다.

뉴턴의 운동법칙(힘을 가하면 가속도가 생긴다)이 확립된 시기에는 모든 자연현상을 뉴턴 역학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체가 받는 힘을 알면 물체의 미래 운동 상태를 알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했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뜨거운 물체에서 나오는 흑체복사, 수소에서 나오는 빛의 주파수 분포 등 뉴턴 역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하나 둘 나타났다.

이와 같이 아주 작은 물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에너지가 알갱이로 양자화된다는 양자 개념은 궁극적으로 모든 물체는 물질파로 불리는 파동성을, 또 파동은 입자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양면성을 밝혔다.

우리가 파동이라고 알고 있는 빛도 아인슈타인이 설명한 광전효과를 통해 알갱이 성질과 파동-입자 양면성이 판명됐다. ‘속눈썹 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라는 카뮈의 표현은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제시하는 물체의 파동-입자 양면성을 잘 나타낸다.

문학은 주관적인 묘사와 감성에 의존하지만 물리학은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성에 의존하는 분야여서 서로 별개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뮈의 작품에서 보듯이 문학의 감각적이며 직관적인 묘사가 물리학적인 해석을 배경으로 천재성이 번쩍이는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다.

현대물리에서 밝힌 파동-입자 양면성과 불확정성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게 한다. 누가 사무실에 있을 확률이 70%, 길가 벤치에 있을 확률이 30%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릴까. 하지만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은 이런 확률적 표현이 미시적 세계를 가장 정확히 나타내니 자연의 오묘함은 끝이 없다.

김정구 서울대 물리천문학과 교수 한국물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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