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서세 400년 만에 한중일 후손 화해·용서의 자리

  • 입력 2007년 5월 13일 1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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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가해자의 후손인 제가 뜻 깊은 행사에 초청 받아 용서를 구하게 된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12일 오전 11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안 충효당.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을 등용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인 서애 유성룡(1542~1607)의 종택이다.

서애의 서세(별세) 400주년 추모행사를 위한 고유제에 참가한 고니시 다카노리(小西尊德·72·일본 기후현) 씨는 '서애 선생의 신주 앞에 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같이 말했다.

다카노리 씨는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의 선봉장을 맡았던 고니시 유기나가(小西行長)의 17대 직계후손이다.

추모제 개막행사를 앞두고 열린 고유제에는 서애의 후손과 충무공 이순신의 덕수 이 씨 문중을 비롯해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는 전국의 20여 개 문중대표, 관람객 등 1500여 명이 참석했다.

다카노리 씨는 고유제에 참가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손을 잡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서애 선생을 생각했다"고 했으며, 유 청장은 "뜻 깊은 자리를 함께 해 기쁘다"고 말했다.

고유제의 종헌관은 서애가 속했던 남인계열과 대립했던 서인의 거두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14대 후손 송영진(36·대전 대덕구 송촌동) 씨가 맡았다. 송 씨는 "선조 대의 사상적 정치적 대립 갈등을 후손 대까지 이어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오늘을 계기로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의 거리를 좁히는 노력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유제에 이어 안동시내 탈춤공원에서 열린 서애 추모행사 개막식에서 아사누마 히데토요(淺沼秀豊·53·일본 나고야 거주) 씨는 한국말로 "저의 선조인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일본 측 총대장에 임명되어 조선을 침략해 당시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선조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고 했다.

또 명나라 장수로 조선을 도왔던 이여송 장군의 후손도 참석했다. 이 장군의 13대 후손인 리저미엔(李澤綿·중국 랴오닝성 거주) 씨는 "조선반도의 위기는 곧 중국의 위기라는 공감 때문에 명나라가 조선을 적극 지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애는 '징비록' 서문에서 "명나라 군대가 여러 차례 출동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위태로워졌을 것이다"고 썼다.

이 자리에서 서애의 종손 유영하(81) 옹, 충무공 이순신의 13대 후손인 이종남(71) 전 감사원장, 일본과 중국의 후손들은 '화해의 불'을 함께 지폈다.

유 옹은 "서애 어른의 서세 400년 만에 한중일 후손이 화해와 용서의 자리를 마련해 뿌듯하다"며 "'징비록'에서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불행이 이 땅에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서애 어른의 뜻을 3국이 함께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안동=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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