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신욱]또 지역정당 대결로 가는가

  • 입력 2007년 5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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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국가는 정당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정당은 정치의 중심에 있다. 정치 선진국일수록 국민은 정당의 정강 정책과 선거공약, 정당 후보자의 리더십과 도덕성을 보고 투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보면 정당은 정치적 이념과 정책으로 대결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을 볼모로 하는 대결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지역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정당은 그 기반이 된 지역의 맹주와 운명을 같이했다. 그리하여 우리 정치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진정한 정당정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도 앞으로 7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국가 현안에 대해 정치적 이념이 다른 정당 간의 색깔 있는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이 정치적 이념을 실현할 후보자를 뽑아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자를 좇아 끌려 다니는 형국이다. 또다시 지역정당의 대결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보수 vs 진보 정책대결 실종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가 갈등하고 대립한 것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가의 효율적인 운영을 어렵게 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정치적 이념이 다른 정당이 정책 대결을 벌일 정치적 환경을 조성한 긍정적 측면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번 대선이야말로 지역감정이 배제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당당한 한판 승부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쪽이 절대적 진리이거나 정의일 수는 없다. 시대 상황에 따라 때론 보수, 때론 진보가 국가 발전을 견인하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그런데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그렇게 갈등하던 보수와 진보세력의 대립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이념적인 적과 동지를 따지지 않은 채 정권 쟁취만을 위해 이합집산을 할 태세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은 선택 기준을 찾지 못하고, 선거 때만 되면 고개를 드는 망국적인 지역주의가 되살아나려 한다.

진보를 표방한 여당은 집권기간에 진보적 가치에 기초해 추진한 정책들을 역사에 책임지는 자세로, 떳떳하게 국민을 설득하고 재집권의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돌리고 구세주를 찾아 중도개혁 운운하면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일이 아니다.

보수를 자처한 제1야당은 여당의 실정 탓에 반사적으로 올라간 국민의 지지도에 도취돼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는 것은 신뢰성을 잃을 뿐이다. 국가 현안에 대해 보수적 가치에 입각한 구체적인 정책은 내놓지 못한 채 좌우를 왔다 갔다 하면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사업성 공약을 외치는 후보자들을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향한 길목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어렵고 중요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로 변화된 남북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해야 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과의 관계, 특히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지혜롭게 정립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이념의 대립으로 혼미해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심화된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국제적 무한 경쟁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교육정책을 과감히 개혁하고, 무너지는 법질서와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권쟁취 위한 인기영합 구호만

집권을 하겠다는 정당이라면 이러한 국가적 난제들에 대해 책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진정한 정치지도자라면 오늘은 당장 어렵더라도 내일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국가 경영의 신념과 철학을 말해야 한다. 국민은 그것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정당의 대결이라는 정치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강신욱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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