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라이프스타일 못 따라가는 낡은 토지규제

  • 입력 2007년 5월 4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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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뒤떨어지는 땅 규제 때문에 한동안 개장이 불투명했던 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 신세계첼시 측은 건물 두 동 건축주의 명의를 다르게 하는 ‘우회전략’을 동원한 끝에 결국 6월 1일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사진 제공 신세계
시대에 뒤떨어지는 땅 규제 때문에 한동안 개장이 불투명했던 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 신세계첼시 측은 건물 두 동 건축주의 명의를 다르게 하는 ‘우회전략’을 동원한 끝에 결국 6월 1일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사진 제공 신세계
테마파크 수도권 진출 금지…미키마우스는 갈 곳 없고

대지면적 3025평 초과 못해…대형 할인점은 땅 밑으로

《“도심도 아니고, 이렇게 널찍한 곳에서 왜 답답한 지하에 매장을 냈을까.” 강원 원주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신세계 이마트 원주점을 찾는 많은 고객은 이런 의문을 갖는다. 이 대형 할인점의 매장은 반지하인 1층과 지하 1층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해답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규정을 들춰 봐야 나온다. 이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만으로 지을 수 있는 대형 할인점의 대지 면적은 최대 1만 m²(3025평). 허용되는 건폐율(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바닥 면적 비율)도 20%에 불과해 매장으로 쓸 수 있는 면적은 600평 정도다.》

최소 2000평 이상의 실내 공간이 필요했던 이마트는 결국 건폐율에 포함되지 않는 지하를 파 공간을 확보했다. 규제가 이 지역 주민의 쇼핑 공간을 지하로 밀어 넣은 셈이다.

땅에 얽힌 각종 규제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시장 개방과 소비 패턴의 변화로 라이프스타일은 급속히 바뀌고 있는 데도 일부 핵심 땅 규제는 수십 년 전과 달라진 게 없어 실생활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레저 문화 반영 못하는 땅 규제

“지금 법체계라면 수도권에서 땅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죠.”

한국에 테마파크 조성을 검토 중인 유니버설스튜디오의 국내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사업 내용은 첨단인데 관련 규제가 구식이라 답답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테마파크 사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았지만 소문만 무성했을 뿐 한국에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 탓이다.

수정법은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에서 6만 m²(1만8150평) 이상 대규모 관광지 개발을 금지하고 있어 법 제정 전에 조성된 20만 평의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규모의 테마파크는 수도권에서 다시 만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진출을 노리는 디즈니랜드가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땅에 계속 관심을 보이는 것도 땅을 새로 개발하는 방식으로는 테마파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99년 덴마크 레고사(社)가 경기 이천시에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하다 결국 홍콩으로 옮겨 간 것도 수정법 탓이 컸다.

○쇼핑 문화 트렌드와 동떨어진 규제

수정법이 제정된 1982년 한국에 ‘명품 아웃렛’이란 개념은 없었다.

미국 등에서는 흔한 명품 아웃렛은 소매점→백화점→대형 할인점의 후속 모델로 떠오르는 사업. 한국에서는 다음 달 1일 경기 여주군에서 문을 여는 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웃렛’이 첫 번째다.

‘아르마니’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이월 상품을 싸게 파는 이런 매장은 도심에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곳에 넓은 장소를 확보해 고객들이 쇼핑과 함께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도록 하는 형태다.

신세계첼시 측은 서울에서 50km 이상 떨어진 만큼 적어도 100개 정도의 브랜드가 모여야 사업성이 있다고 보고 최소 2만6446m²(8000평)의 공간은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는 수정법을 들어 “자연보전권역인 여주에 세울 수 있는 판매시설 규모는 1만5000m²(4537평)를 넘을 수 없다”며 법제처에 법 해석을 의뢰하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신세계첼시 측은 면적이 1만2764m²(3862평)인 A동과 1만4354m²(4342평)인 B동의 명의를 다르게 하는 ‘우회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쌀 소비 줄어도 논밭은 손 못 대

농지용 땅에 대한 규제를 담은 농지법은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자유전(耕者有田·농사를 짓는 사람만 밭을 가질 수 있다)’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식생활이 바뀌어 쌀 소비가 줄고 있는데도 농지 규제는 여전하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년 전인 1986년 127.7kg에서 급격히 감소해 지난해에는 78.8kg으로 쌀 한 가마니(80kg)에도 못 미친다.

국토의 5분의 1이 농경지이지만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약 3%에 불과하다. 고령화와 시장 개방에 따라 유휴 농지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1994년 제정된 농지법은 아직도 땅을 농업에 꽁꽁 묶어 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지보전부담금. 농사를 짓는 것 외의 다른 용도로 농지를 쓸 때 정부가 그만큼의 대체 농지를 만들기 위해 사업 시행자에게 부과하는 부담금을 내도록 한 것이다.

‘농업인’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하거나 임차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부처 간 의견 차로 개선 쉽지 않아

이런 이유 때문에 재정경제부는 다음 달 말 발표할 ‘2단계 기업 환경 개선대책’에서 국민의 생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각종 땅 규제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할 계획이다.

그러나 건교부, 농림부 등 땅 규제 주무 부처들이 수도권 과밀 억제, 식량 안보 문제 등의 이유로 기존 틀을 지켜야 한다는 방침이어서 제도 개선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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