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주식회사 미국, 주식회사 한국

  • 입력 2007년 5월 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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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신뢰도 7년 만에 최고. 탄탄한 실적에 기업들 목소리도 높아졌다.’ 왠지 기를 펴지 못하는 국내 기업인들은 귀가 솔깃하겠지만 우리가 아니라 미국 소식이다.

홍보회사 에델만의 조사 결과 미국 중산층의 57%가 ‘기업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친(親)기업적 인식이 곳곳에서 감지된다는 미국 경제지 포천의 보도다. 2001년 회계부정 기업 엔론의 파산과 닷컴 거품 붕괴의 충격을 딛고 재계가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업에 대한 57%의 지지에 반색을 한다면 작년 하반기에 50.2점(100점 만점)이던 우리의 기업 호감도도 낮은 게 아니다. 2003년 하반기 38.2점 이후 꾸준히 높아졌다는 대목도 의미가 있다.

눈여겨볼 점은 ‘주식회사 미국’의 재기 비결이다. 회계 부정 스캔들이 잇따라 터질 때 대기업들은 도매금으로 날강도로 취급됐고 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는데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었을까.

포천은 2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복구 사례도 거론했다. 정부가 헤매고 있을 때 대신 뛰어 준 게 기업들이었다. 페덱스는 구호물자 440t을 거의 공짜로 날라 주었고 월마트는 연방재난관리청보다 며칠 먼저 피해 지역에 수백만 달러어치의 물품을 나눠 줬다.

그렇다고 기업이 정부 예비군처럼 뛰어 박수 받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기업이 할 일은 따로 있다. 포천도 “경제를 키우고 고용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기본이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수년간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 왔고 현재 4.5% 수준인 실업률은 사상 최저치에 근접했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라는 응답 비율이 2003년 이후 계속 하락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시 국내를 보자. 올해 경제성장률은 5% 목표에 미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아졌다. 일자리 창출 규모는 부진했던 작년보다 올해가 더 작다. 내수와 설비투자가 회복되는데도 그렇다. 경제 성적표를 보며 흔히 정부 책임을 거론하지만 기업의 몫도 클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유난스럽게 모든 걸 다 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국민이 기업 편을 더 들어 줄 뿐이다. ‘기업에 대한 편애’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면 곤란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연초에 최고경영자(CEO) 100명에게 물었더니 기업가 정신이 ‘위축됐다’는 응답이 72%였고 그 이유로 ‘반(反)기업 정서’(35%)와 ‘정부 규제’(24%) 등이 주로 꼽혔다. 못 뛰는 원인이 밖에 있다는 것이다. 일면 이해하면서도 ‘원인을 안에서도 찾아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반기업 정서에 휘청거리는 기업가 정신이라면 너무 약하다.

재계는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를 다중(多重) 면죄부로 삼을 순 없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이 이어 온 ‘회장 스캔들’은 오히려 행정부와 사법부의 온정주의가 문제가 될 정도다. 사건 뒤끝에 ‘사회 환원’이라며 어느 주머니에서 나오는지 모를 돈을 내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식상하다 못해 거부감까지 든다.

‘주식회사 미국’은 5년 반의 근신 기간에 펀더멘털(기본)에 충실했고 좋은 성과를 냈다. 스캔들 비용을 제대로 거둬들인 셈이다. 계속 값비싼 비용을 치르는 ‘주식회사 한국’은 언제 어떻게 달라질 건가.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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