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사별한 가장의 빚을 이제와 가족에게 갚으라니”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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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고등학생 막내딸에게까지 개인 파산이라는 절차를 밟게 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10년 전 남편이 암으로 숨진 뒤 동사무소에서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근근이 살아오던 신모(51·여) 씨. 그는 올 9월 두 딸(25, 17), 아들(23)과 함께 수원지법에 개인 파산 신청을 했다. 법원으로부터 “사망한 남편이 1996년 1월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5300만 원을 대신 지급하라”는 판결문을 받은 지 두 달 만의 일이다.

남편이 대출받을 때 빚보증을 섰던 한 금융기관이 보증인 책임에 따라 은행에 돈을 먼저 갚은 뒤 지난해 12월 신 씨 가족을 상대로 이 돈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낸 결과였다.

그러나 신 씨는 남편이 숨진 뒤 10년간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는 남편이 남긴 22평짜리 아파트로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1억700만 원에 아파트를 팔았다. 남편으로부터의 상속 자체를 포기하면 남편이 진 빚을 갚을 필요가 없었지만 신 씨는 상속 포기가 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신 씨는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남편의 암 투병에 든 치료비 2000만 원과 신용금고 대출금 7400만 원을 갚았다. 큰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둘째인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막내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신 씨 가족은 친척들의 도움으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하는 방 한 칸을 얻어 ‘더 막막해진’ 새 생활을 시작했다.

신 씨는 파출부 일, 식당 일, 공장 일 등 닥치는 대로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고 한다.

큰딸과 아들도 모두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그때부터 신 씨는 몸이 약해져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다.

네 가족은 10년 동안의 힘겨운 삶 끝에 마주한 5300만 원의 난데없는 빚 때문에 결국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게 된 것.

신 씨는 “자식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은 어머니 걱정뿐이다.

“어머니는 몸도 돌보지 않고 일을 하셔서 지금은 몸이 성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제 빚을 대신 갚아주지 못하신다며 울고만 계십니다. 부디 저희 가족을 선처해 주세요.”

이들의 개인 파산 절차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가 무료로 돕고 있다. 신 씨와 자녀들은 다음 달 초 파산결정이 내려지고 면책 결정을 거쳐 빚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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