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출판 3代’의 꿈

  • 입력 2005년 11월 26일 03시 02분


코멘트
손자의 꿈은 영화 제작자였다. 영화 투자사에 근무하며 일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보급에 신명을 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어야 할 가업이 있었다. 책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2000년 서른두 살의 손자는 출판사 직원이 됐다.

할아버지의 꿈은 ‘문화건국(文化建國)’이었다. 1945년 서른세 살의 할아버지는 “출판을 통해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글과 우리말을 보급하는 것이야말로 건국 이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결단했다. 은행원이라는 일자리를 버리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출판사를 차렸다. 광복을 맞이한 을유(乙酉)년의 굳은 뜻을 잊지 않기 위해 회사명을 ‘을유문화사’로 지었다.

한글 쓰기 지침서인 첫 책 ‘가정글씨체첩’부터 일제강점기 말 조선어학회가 옥고를 치르면서도 끝내 지켜 낸 한글사전 원고를 11년에 걸쳐 완간한 우리말 ‘큰사전’, 국내 출판계에 문고판을 처음 선보인 ‘을유문고’, 동서양 명작을 한글로 옮겨 뭇 문학청년을 설레게 한 ‘을유세계문학전집’까지. “을유는 하나의 출판사가 아니라 광복 이후 한국의 문화사(史) 그 자체”(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였다.

그러나 손자가 처음 출근했을 때 그 영광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남아 있는 어느 왕조의 유물’ 같은 것이었다. 직원 20여 명에 컴퓨터는 달랑 2대인 사무실. 출판사 바깥은 이미 전자출판과 초고속 인터넷망의 세상인데 을유문화사가 세상과 접속하는 방식은 여전히 전화 모뎀이었다. 손자가 책 만들기보다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용산 전자상가를 헤매며 업무용 컴퓨터를 사는 것이었다.

달라진 인심은 더욱 난감했다. ‘을유 책의 애독자이자 정신적 자식’임을 자처하던 명사들도 정작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내 달라’고 하면 “다른 데처럼 광고나 마케팅을 해 주나? 표지 디자인이 세련돼야 할 텐데…”라며 낯빛을 바꾸었다.

입사 1년 7개월 만에 손자가 기획해 내놓은 첫 책은 ‘포지셔닝’이라는 마케팅 지침서였다. 이제 6년째. 정신적 문화재라 불러도 좋을 할아버지의 서가에 손자는 조심스레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 같은 현대의 고전을 한 권씩 더하며 “책과 사람이 화학적으로 융합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다.

어깨에 짊어진 전통이 힘으로 느껴지는 때도 있을까. 손자는 “실무에서 떠났지만 매일 오전 9시면 사무실에 나오시는 할아버지”를 말했다. 눈 쌓인 날 자동차도 못 올라간 종로구 평창동 언덕을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내려온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손자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책 만드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었다.

93세의 할아버지 정진숙 회장과 37세의 손자 정상준 상무가 매일 함께 출근하는 을유문화사가 12월 1일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해방둥이 출판사로서 오늘도 책을 내고 있는 을유문화사를 기리기 위해 출판계가 십시일반 ‘60주년 기념 준비위원회’를 꾸려 이날 파주 출판도시에서 ‘을유문화사 출판 60년전’을 연다.

이제 손자의 꿈은 할아버지가 낸 ‘세계문학전집’을 21세기에 맞게 다시 출간하는 것이다. “짧게 걸려도 20년이라는 각오”라며 손자는 넉넉히 웃었다.

정은령 문화부 차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