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자본시장 ‘빅뱅’이 다가오는데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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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아드보카트 축구대표팀 감독은 요즘 선진국형 멀티플레이어를 찾고 있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과 함께 김동진도 떠오른다. 수비와 공격을 잇고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 선수들에겐 큰 기회이며 동시에 부담도 따른다.

정부가 내년에 만들겠다는 ‘자본시장통합법’은 흩어져 있는 법조문을 단순히 모아 놓는 게 아니다. 증권 선물 투신 자산운용회사 등 자본시장 필드를 뛰는 선수들이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게 규제를 푸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회사들엔 기회이자 위기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이 떨어져 가던 영국은 1986년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섰다. 런던발(發) ‘빅뱅(big bang·대폭발)’이었다. 은행 증권업 간 장벽 철폐, 증권거래소 가입 자유화 등 획기적인 벽 허물기로 시장 파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뒤 여러 나라가 자본시장 규제를 풀면서 자칭 ‘빅뱅’이라거나, 이보다 좀 충격이 작은 경우엔 ‘스몰뱅’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10여 년간 ‘스몰뱅’을 여러 차례 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규제가 없어지면 다른 규제가 생겨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동북아 금융 허브’라는 마당을 만들겠다고 뉴욕의 월가에서도 큰소리치면서 규제와 간섭을 끊지 못한다.

국내업계는 규제 탓에 상품 하나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고 불평이다. 그러면서 ‘적당한 경쟁’을 즐긴다. 증권회사들은 수익의 절반을 위탁매매 수수료로 번다. 시장점유율 수치를 무시하거나 자산관리 또는 부자를 겨냥한 프라이빗 뱅킹(PB) 쪽으로 치고 나가는 회사는 몇 안 된다.

그러는 사이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이나 투기성 자본이 국내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저가 주식 선점으로 수조 원을 긁어 갔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 투기자본이 거둬 간 시세차익이 6조 원이라는 추계도 있다. 업계는 “저걸 막아야 하는데 뭘 하고 있나”라고 흥분하면서 손가락으로 정부를 겨냥한다.

정부 예고로는 이런 불평과 핑계가 무의미해질 것 같다. 미국 투자은행식 금융투자회사 설립도 허용하고 맘껏 뛰게 해 준다니, 앞으로는 업계가 못하면 스스로 실력을 탓해야 할 것이다.

이런 변화가 조용히 올 리 없다. 보험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팔 수 있게 한 은행연계보험(방카쉬랑스)을 놓고도 은행과 보험사,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가 6개월가량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 은행연계보험보다 100배, 1000배쯤 큰 ‘빅뱅’이라면 금융회사들이 어떻게 나올까. 이기적 주장을 하더라도 장래의 손익을 제대로 예측이나 하고서 공방을 벌인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퍼덕이면 뉴욕에 폭풍우가 몰아칠 수 있다’는 ‘나비효과’는 불확실성의 구름에 뒤덮인 현대 경제에서도 나타난다. ‘빅뱅’의 어느 파편에 어느 금융회사가 날아가고 누가 돈벼락을 맞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다른 나라보다 높게 쳐 놓았던 울타리를 거의 한꺼번에 허물겠다고 한다. 30여 년 역사에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과 맞잡이가 될 멀티플레이어를 키우기 위해 정부 규제 간섭을 풀겠다는 것이다. 불과 몇 달 후면 구체안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탐색전을 치르는 중인지, 정부도 업계도 너무 조용한 느낌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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