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고 깨고 조이는 ‘드레스 코드’…“날 구속하지마”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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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수 신해철의 복장이 뜨거운 논란이 됐다. TV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그가 후드티(모자가 달린 티셔츠)를 입고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나왔던 것. 방송 이후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토론장은 록 무대가 아니다”라는 비난과 “토론복이 따로 있나”라는 옹호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신해철만이 아니다. MBC 시사 프로그램 ‘W’의 진행자 최윤영 아나운서는 첫 회 방송에서 노출이 많은 옷을 입었다가 “영화제 시상식이냐”는 시청자들의 맹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른바 드레스 코드(dress code·장소와 상황에 따른 복장 관행)가 한국사회에 ‘코드’ 논란을 빚고 있다.

경계선도 공식도 분명하지 않지만 자칫 심리적인 저항선을 넘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는 드레스 코드. 그 경계 설정을 두고 전통파와 전위파 간의 밀고 당기기가 한창이다.

가수 조성모는 음반 발매 기념 파티를 열면서 참석자들에게 ‘1980년대의 추억을 나누기 위해’ 청바지를 입고 오라고 주문했다. 사진 제공 헤븐엔터테인먼트

○코드를 즐긴다

가수 조성모는 13일 자신의 새 음반 발매 기념파티에 참가할 사람들에게 드레스 코드를 지정했다. 상의는 마음대로 입어도 되지만 하의는 무조건 청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 일렉트릭 피아니스트인 막심은 다음달 11일 내한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에게 검정색 옷을 입고 와 달라고 주문했다. 조성모 음반 행사의 기획사는 “1980년대 가요를 리메이크한 음반인 만큼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80년대 문화를 향유하며 동질감을 느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드레스 코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놀이’와 ‘취미’의 일부다. 남성복 제조업체인 솔리드옴므의 우영미 대표는 “남성들의 경우 예전에는 직장에서든 데이트 때든 언제 어디서 입어도 크게 튀지 않는 ‘한 벌의 옷’을 원했다”면서 “그러나 요즘 젊은 남성들은 주말에 편하게 입을 옷과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 입을 옷을 따로, 주중에 사무실에서 일할 때 입을 옷과 프레젠테이션 때 입을 옷을 따로 고른다”고 말했다.

○코드를 깬다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는 김모(29·여) 씨는 “언제부터인가 여름에는 맨발로 앞이 트인 샌들을 신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발가락이 보인다고 피했는데…”라고 말한다.

여성의 드레스 코드는 무너지는 추세다. 정장을 고수하던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의 여성 앵커들이 딱딱한 슈트 차림에서 벗어나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 정세진 KBS 아나운서는 “지상파 방송사의 오전 10시나 오후 5시 뉴스 등은 재킷 없이 블라우스 차림으로 진행하는 아나운서들도 있다”면서 “시청자들이 뉴스를 편안하게 보도록 돕기 위해 옷차림을 바꾸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희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변화에 대해 “업무 능력이 있는 것과 아름다움이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인식 변화의 상징적 존재로 꼽히는 것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 연구원은 “강 전 장관은 파스텔톤 의상, 달랑거리는 귀고리 등 공무원으로서는 파격적인 옷차림을 선보이면서도 호감을 얻었다”며 “고위 관료였기 때문에 드레스 코드의 심리적 저지선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캐주얼한 티셔츠에 가죽장갑을 끼고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섰던 가수 신해철(위)과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 최윤영(아래) 아나운서는 “차림새가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의 표적이 됐다. 사진 제공 MBC

○코드를 조인다

문제는 개성의 표현이 일반적인 수용의 폭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 김정희 연구원은 “일련의 복장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드레스 코드의 변화에 대한 수용 정도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 연구원은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은 언제나 나올 수 있지만, 지나칠 경우 돌만 맞고 끝날 수 있다”고 말한다.

복장에 관한 규제가 지나치게 풀렸다는 공감이 형성됐을 때는 드레스 코드가 엄격하게 강화되는 역류 현상도 빚어진다. LG전자는 부장급 이상 임원들이 넥타이를 매지 않았던 사내 방침을 바꿔 올 초부터 넥타이를 갖춰 매도록 했다. 근무 기강을 새롭게 세우기 위한 것이 이유였다.

미국 프로농구(NBA) 사무국은 지난달 말 2005∼2006 시즌 드레스 코드를 발표하면서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옷 밖으로 드러나는 목걸이, 소매 없는 티셔츠 등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NBA의 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흑인 선수들의 힙합 패션이 길거리의 갱을 연상시킨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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