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초보감독’ 선동렬과 허재

  • 입력 2005년 11월 1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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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의 장막을 쳐놓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말단 병사도 나를 부를 때는 이름만 부르면 됐다. 난 내 뺨에 화살을 쏜 적(敵)이나 포로까지 만나 함께 일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사나이답게 호탕하게 살았으므로 그것으로 족하다.”(칭기즈칸)

밤하늘엔 별도 많다. 별들은 캄캄한 밤일수록 더욱 빛난다. 하지만 그 수많은 별도 눈부신 보름달이 뜨면 빛을 잃는다. 달빛이 밝으면 별빛은 으레 흐려진다.

프로스포츠에도 수많은 스타가 있다. 하지만 그런 스타들도 보름달 같은 슈퍼스타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프로야구의 선동렬(42) 삼성 감독과 프로농구의 허재(40) KCC 감독이 바로 그런 대스타의 예다. 선 감독은 현역 시절 ‘국보급 투수’로 불렸고 허 감독은 ‘농구 9단’ ‘농구대통령’으로까지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대스타 출신이라고 해서 꼭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종 프로스포츠의 감독 중에는 스타 출신보다는 현역 때 이름 없던 경우가 훨씬 많다. 당장 축구에서 히딩크나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렇다. 그들은 현역 땐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지도자로선 세계적인 명감독으로 우뚝 섰다.

어느 팀이나 빼어난 한두 명의 스타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팀은 그들 한두 명의 스타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자기 맡은 일을 하는 수많은 선수의 숨은 희생이 없다면 팀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밤하늘에 보름달만 있으면 밤하늘이 아니다. 은 싸라기를 뿌려 놓은 듯한 은하수와 크고 작은 수많은 별이 있어야 비로소 반짝이는 밤하늘이 된다.

선 감독은 초보감독으로서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그의 우승 소감은 “운이 좋았다”는 것과 “선수들이 참 잘해줬다”는 정도다. 그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겸손의 리더십’이다. 그 정도 대스타 출신이면 한번쯤 잘난 체도 할 수 있으련만 어디서나 늘 몸을 낮춘다. 몸가짐이 반듯하다.

선 감독은 최근 한 방송사로부터 ‘선 감독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의받았지만 이를 정중히 사양했다는 후문이다. “나이도 어린 내가 무슨 다큐멘터리냐, 그런 것은 김응룡 삼성 라이온스 사장님 같은 분들이 하는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선 감독은 국산차(에쿠스)를 타고 다닌다. 외제차를 탈 만도 하건만 ‘튀는 게’ 싫단다. “우리 차도 얼마나 좋은데…. 난 나 개인이 아니다. 나를 보는 많은 팬들이 있다. 내가 앞장서 외제차를 타고 싶지는 않다.”

허 감독은 이제 초보감독으로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다. 팬들은 그가 현역 때처럼 와일드한 감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하거나 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치는 그런 ‘핏대 감독’ 말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허 감독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선수들의 등을 다독거려 주고 심판의 애매한 판정에도 허허 웃었다.

“현역 말년에 체력이 달려 벤치에 자주 앉게 됐는데 그때 비로소 후보 선수들의 애환을 알게 됐다. 그 전엔 벤치멤버들이 못하면 많이 혼내줬는데…. 미국에서 1년 동안 연수할 때도 도를 많이 닦았다. 참을성이 많이 늘었다.”

허 감독인들 왜 판정에 불만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아예 언급을 회피하며 몸을 낮춘다.

“난 초보감독이라 심판 판정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수들 플레이 하는 것 보기도 바쁘다”

노자 할아버지는 말한다. ‘공을 이뤘으면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떠나라(功成而不居)’고. 김완하 시인은 노래한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눕기 때문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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