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원어민 영어? 우린 ‘콩글리시’로 떴어요

  • 입력 2005년 11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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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그콘서트’(왼쪽)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외국인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는 재연 장면. 외국인 재연 배우들이 어설픔을 오히려 강점으로 삼아 시청자들에게 작은 웃음을 준다. 사진 제공 MBC KBS
KBS ‘개그콘서트’(왼쪽)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외국인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는 재연 장면. 외국인 재연 배우들이 어설픔을 오히려 강점으로 삼아 시청자들에게 작은 웃음을 준다. 사진 제공 MBC KBS

“쏘리 쏘리∼ 안쏘리! 땅큐베리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밀고 있는 유행어예요. 골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잖아요.(웃음)”

KBS2 ‘개그콘서트’의 ‘월드 뉴스’ 코너에서 괴짜 외국인 뉴스앵커 역으로 개그맨에 도전한 샘 해밍턴(28·호주 출신) 씨. 그는 요즘 삶이 즐겁다. 재연 프로그램에서 주로 단역을 맡았던 그가 당당히 ‘개그맨’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

호주 빅토리아 주의 스위번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2002년 한국 내 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삶이 변한 시기는 2003년. 다니던 회사가 적성에 안 맞아 고민하던 중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외국인 재연 배우로 출연했다.

재연 배우에서 개그맨으로 도약한 기회도 우연히 찾아왔다. 개그맨 장동민, 유세윤의 개그 공연을 관람하다가 관객을 무대에 올리는 코너에 참여해 주목을 끈 뒤 ‘개그 콘서트’ 팀에 합류했다.

○서투름과 어설픔으로 승부하라

언제부턴가 아마추어 외국인 연기자들이 TV에 자주 나온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삽입되는 ‘재연 장면’ 때문. 2000년대 초반까지는 외국에서 일어난 실제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한국 단역배우들이 금발 가발을 쓰거나 검은 피부로 분장했다. 하지만 2002년부터 방송사들은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외국인을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름은 일명 ‘외국인 재연 배우’. 부자연스러운 대사 처리와 서투른 몸짓으로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이들은 모국에서는 연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보통사람’이다. 대개 이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10여 개의 한국 연예 에이전시를 통해 출연 기회를 잡는다. 이들이 낯선 땅에서 연기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밍턴 씨는 “대부분 외국인 재연 배우들은 돈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것”이라며 “모국에서는 오디션 등 절차가 복잡해 연예계 진출을 포기했던 사람들도 한국에서 재연 배우를 통해 새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출연료는 회당 20만∼40만 원 선. 경력에 따라 보수는 A, B, C 등급으로 나뉜다. 한국인 단역 배우들이 20만 원 이하의 출연료를 받는 것에 비해서는 많은 셈.

현재 방영 중인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KBS2 ‘스펀지’ 등을 통해 활동 중인 재연배우는 30명 내외. ‘스펀지’ 등에 외국인 재연배우를 알선하는 도베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주변의 권유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에이전시를 찾아내서 스스로 찾아오는 외국인이 꽤 많아 출연 경쟁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재연 배우 선발 기준은 무엇일까?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연출했던 조성렬 PD는 “주로 미국, 영국, 캐나다인 중 연기를 잘하기보다는 방송 메커니즘을 잘 아는 사람, 콩글리시에 능숙해 스태프와 대화가 잘되는 사람, 잘생기기보다는 인상이 좋은 사람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자주 출연한 스웨덴 출신 뵤른 스벤 에리크 비덴(28·일명 비욘) 씨는 잘생긴 외모 덕분에 회원이 4000여 명인 인터넷 팬 카페가 있을 정도.

시청자 안현진(26·여)씨는 “재연 프로그램에 나오는 외국인 배우들 중 가끔 너무 연기를 잘하는 외국인이 있으면 부자연스러울 정도”라며 “이들의 설익은 연기가 어색하게 여겨지기보다는 오히려 보통사람 같이 느껴져 외국인이라는 거리감을 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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