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랄프 고트차트]삼겹살에 소주 ‘식탁의 대발견’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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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축구를 통해서였다. 당시 독일에서 뛰고 있었던 차붐(차범근)이 한국에서 왔다는 정도가 한국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의 아들 차두리 선수도 아버지처럼 독일에서 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예전에 홍콩에서 일할 때 선배 주방장이 한국의 특급 호텔에서 일한 적이 있어 가끔 한국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들었던 한국 관련 얘기가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 온 지 1년 2개월이 지난 요즘 한국은 매력적인 곳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내 키가 크다 보니(205cm)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낀다. 길을 걸을 때 수십 명의 한국인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영화관에 들어설 때도 많은 사람이 ‘경계의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설마 저 사람이 내 앞에 앉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터. 몸에 맞는 옷이나 신발을 사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적응됐지만….

먹을거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콩 등 작은 음식을 가느다란 젓가락 두 개로 자유자재로 집어 먹는 한국인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황우석 박사도 ‘한국인의 젓가락 사용’을 예찬했다지만 대부분의 외국인은 이런 손놀림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이크나 쿠키, 초콜릿 등을 만들 때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 요구된다. 그래서일까. 한국인 주방장들의 손놀림은 그럴 때마다 진가를 발휘한다.

한국은 해산물이 참 풍부하다. 일전에 한국 친구들과 식당에 갔다. 오징어처럼 생겨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산낙지. 이것을 날로 먹자는 친구들의 요구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아직 산낙지만은 ‘수련’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한국에서의 ‘식탁의 대발견’은 바로 삼겹살과 소주다. 삼겹살과 소주의 어울림도 일품이지만 친구나 가족이 삼삼오오 둘러앉은 모습은 참으로 정겹다.

지금까지 9개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해 봤지만, 서울은 정돈이 잘된 도시다. 특히 인사동의 오래된 건물과 작고 오밀조밀한 카페와 식당을 좋아한다.

한국인은 무스 케이크와 시폰 케이크, 그리고 고구마 케이크와 치즈 케이크를 특히 좋아한다. 케이크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보니 다른 맛의 케이크도 접해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과 주방장들이 제과점을 직영한다. 한국에 아직 하나도 없는 것은 이런 시장의 한계를 보여 주는 사례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과 케이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지 32년이 훌쩍 지났다.

방학 때 아이들을 위해 ‘케이크 교실’을 마련할 때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7세 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옆집 9세 누나와 함께 요리책을 펴고 거기에 쓰여 있는 대로 케이크를 만든 적이 있다. 부엌은 밀가루와 설탕 폭탄이라도 맞은 듯 엉망이 되었지만 제과 주방장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그날 이후였다. 케이크 만들기 교실에 모인 아이들을 보면 그들이 나처럼 제과 주방장의 꿈을 키워 언젠가 그 꿈을 실현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랄프 고트차트 인터컨티넨탈호텔 제과 제빵 주방장

:약력:

독일 하노버 출신으로 1966년에 태어났다. 하노버대를 졸업하고 영국, 이스라엘, 파나마, 남아프리카공화국, 홍콩, 인도, 미얀마를 거쳐 미국 시카고의 페닌슐라호텔 등 세계 특급 호텔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2004년부터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의 제과·제빵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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