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15>료마가 간다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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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라는 실존 인물을 다룬 장편 역사소설(총 10권)이다. 구로부네(黑船)로 상징되는 서양세력의 침탈, 일본과 서양의 불평등 조약 체결, 개국에 대한 불만과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의 전개,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해체 및 메이지(明治)유신이라는 일본 근대사의 현장을 료마의 파란만장한 혁명적 생애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해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가하는 시바가 형상화한 료마의 매력은 지금까지 다양하게 해석돼 왔다. 동시대 수많은 지사들과 구분되는 료마의 매력을 필자 나름대로 평가하면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소설 속의 료마는 역사를 이항대립의 구조 속에서 파악하지 않는다.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은 개국이냐, 쇄국이냐를 선악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서로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료마는 일방적인 배척보다는 당시 수많은 정치적 이해집단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일본 내부의 상쟁과 유혈을 피하면서 서양세력으로부터 침탈당하지 않고,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것이 일본이 도달해야 할 역사적 방향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둘째, 다가올 혁명은 만민의 평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시 막부 타도, 존왕양이를 역설하는 지사들은 모두 서양의 접근에 무능력한 막부를 쓰러뜨리고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명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운동이 정치권력을 둘러싼 항쟁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료마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신분제도를 뛰어넘어 만민 평등의 통일국가를 지향하였으며, 혁명의 과실 또한 만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혁명의 도달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셋째는 근린 평화주의의 주장이다. 료마는 서양의 침략에 대해 조선, 중국과 3국 동맹을 맺어 당시 동진(東進)하고 있던 서양세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료마의 혁명사상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천황 중심의 통일국가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로는 보기 드문 인류 보편성과 개방성을 수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을 성사시킨 료마가 암살된 이후 일본 정치는 이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나갔다. 이후 일본의 정치는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 두 번(藩)을 중심으로 한 일부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로 전개됐고, 결국은 서양의 제국주의를 그대로 모방해 아시아 침략으로 나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작가가 료마의 사상과 그렇게까지 차별화하려 했던 일본의 신국(神國) 사상은 일본 정치체제의 중심이 돼 극단적인 파시즘 체제를 초래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1억 부 이상 판매되면서 정치, 경제계 등에 수많은 료마 추종자를 만들어 그를 오늘날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상으로 확립시켰다. 이러한 료마의 인물상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초월하는 타협 정신과 넓은 안목의 국가 의식, 상쟁보다는 공생(共生)에 토대한 평화주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한 개방 의식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바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자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정병호 고려대 교수 일어일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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