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프랭크 리치]백악관은 反戰 함성에 침묵말아야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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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시핸 씨로서는 1인 시위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날짜를 고를 수는 없었으리라. 그가 1인 시위를 시작한 날로부터 정확히 4년 전인 2001년 8월 6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 미국 공격 결정’이라는 정보 보고에 휴가지인 크로퍼드 목장에서 낚시를 즐기는 것으로 화답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3일 미 해병대원 14명이 폭사했는데도 부시 대통령은 6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이라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초기에 무마하면 된다. 문제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스위프트 보팅(The Swift Boating)’이 시작된다(스위프트 보팅이란 존 케리 미 상원의원이 베트남전쟁에서 탑승한 고속정에서 나온 말로, 지난해 대선 당시 공화당은 ‘함께 탄 적 없다’는 참전 용사들의 발언을 케리 후보 비방 광고에 활용했다).

백악관은 이라크전쟁 비판자들에 대해 인신공격 전술을 애용해 왔다.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 경고를 무시했다고 폭로한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 담당 보좌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장비 부족을 꼬집은 토머스 윌슨 상병, ‘리크 게이트’에 연루된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대사 등도 인신공격 대상에 올랐다. 인신공격에 초점이 맞춰지면 전쟁의 부당성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기 마련이다.

시핸 씨에 대한 공격 역시 즉각 시작됐다. 보수 언론은 그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묘사했으며 보수 누리꾼들은 그가 이혼 소송을 당했다는 소식을 화제에 올렸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이번만은 완전히 실패했다. 부시 대통령의 ‘무사태평’ 휴가가 ‘무의미한 희생’이라는 시핸 씨의 메시지와 극명하게 대비됐기 때문이다.

시핸 씨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아들 케이시 시핸 상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 젊은이의 삶과 죽음은 참전 용사들의 숭고함과 더불어 명령권자들의 오만함과 무능력, 무모함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시핸 상병은 지난해 4월 이라크에서 미국인 구조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했다. 부시 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한 지 거의 1년이 된 시점이었다. 그가 사망하기 몇 달 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 보안군의 규모와 능력을 과장해 발표했다. 그러나 시핸 상병이 전사할 당시 이라크 군경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지금도 미군의 도움 없이 저항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이라크 전력은 소수라고 한다.

이라크전쟁이 실패임을 웅변하는 것은 시핸 상병만이 아니다. 또 다른 전사자의 어머니인 설레스트 자팔라 씨도 최근 크로퍼드 목장으로 향했다. 그의 아들인 셔우드 베이커 병장은 지난해 4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조사단을 경호하다 전사했다.

지난해 3월 말 부시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WMD를 농담거리로 올렸다. “WMD가 어딘가 있을 텐데”라며 대통령 집무실을 뒤지는 모습이 방영됐다. 자팔라 씨는 분노에 차서 힐난했다. “아직도 날조된 전쟁에 대해 농담을 하고 있는가.”

부시 대통령의 이런 대처 방식 탓에 이라크에서의 수많은 희생은 미국인들의 눈과 마음에서 멀어져 갔다. 이것이 국방부가 미군 전사자들의 귀환에 대한 보도를 통제하고 부시 대통령이 전사자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다. 또 대통령 취임식이 이라크에 대한 언급 없이 화려한 잔치로 치러진 이유이기도 하다.

올여름에도 백악관은 이 각본에 충실했다. 부시 대통령의 차량 행렬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뒤로한 채 정치자금 기부자들을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고통 분담 없는 전쟁은 불똥을 거꾸로 튀게 할 것이다. 이제 백악관은 이라크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의 저항 세력에 대한 통제력도 갖고 있지 않다.

프랭크 리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정리=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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