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명철]돌아가는 北대표단에게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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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표단이 서울에 올 때마다 저는 과거 당신들에게 가졌던 미움과 함께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정겨운 마음이 격렬히 교차하는 힘든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이번 북한대표단의 서울 방문 때도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감정은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이번만큼 당신들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당신들의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참배와 국회 방문은 잘한 것 중에 잘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한을 품고 찢길 대로 찢겨 너덜너덜해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한 가닥 위안을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국립묘지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역사이고, 국회의사당은 대한민국의 주권과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과거 한국의 실체를 부정하고 사사건건 대결하고 대립하던 시절에 어찌 이런 사건을 상상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나아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서야 어찌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가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말 나온 김에 아쉬운 말, 평소 생각하던 말도 꺼내 보렵니다.

첫째, 진실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끼리’라는 의미는 서로 진정으로 친해져서 어려울 때 도우며 함께 미래를 개척하자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솔직성과 진실함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서울 방문의 행보에서도 진실성을 확신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대목이 있습니다.

“국립묘지도 참배하니 앞으로 더 높은 산도 넘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해석에서 희망을 느끼지만 국립묘지에 누워 계시는 모든 이들에 대한 참배가 아니라는 데서 불신도 갖습니다. 국립묘지에는 6·25전쟁의 전사자, 경제강국 한국을 일으켜 세운 영령들이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참배하고 왔다면 보는 이마다 자유로운 해석을 하며 위로받았을 텐데 굳이 참배 대상을 ‘항일의 선열들’이라고 못 박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둘째, ‘우리 민족끼리’라는 정책이 포함하는 대상의 문제입니다. 얼마 전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담화에서 통일문제가 어느 특정 정파나 특정인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얘긴데 당신들이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의 범주에는 어떤 계층과 성향의 사람들이 포함되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북한의 언론매체를 통해 보면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과거 북한에 의해 피해를 봐 북한체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다고 이해됩니다. 이 같은 제 생각이 맞다면 ‘우리끼리’는 반쪽짜리 화합이고 반쪽짜리 화합은 또 다른 분란만을 불러오겠지요. 6·25전쟁 전사자든, 납북가족이든, 탈북자든, 이념적 반대론자이든 서로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하면서 화해와 협력은 하기 힘듭니다.

셋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남북관계의 측면에서만 접근해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측이 민주주의와 경제체제 이행문제, 더 중요한 인권문제 등 여러 가지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도 잘해 나갈 수 없습니다.

넷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흐름에 맞추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다면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존하는 핵문제를 외면한 채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경제난 극복도 당장은 국제사회의 지원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돌아가시는 북한 대표들에게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에 국립묘지에 참배하는 용기를 보여줬듯이 다음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보다 높은 산을 넘어 모두가 기뻐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전 김일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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