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경축사]法질서와 충돌…‘과거사 폭풍’ 예고

  • 입력 2005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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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식장의 盧대통령노무현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이 15일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앞 광장에서 열린 제60주년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겨레의 새 빛’ 점화식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경축식장의 盧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이 15일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앞 광장에서 열린 제60주년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겨레의 새 빛’ 점화식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5일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 발언에서 왜 갑자기 ‘시효 배제’ 발언을 했을까. 또 노 대통령의 뜻대로 시효배제법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노 대통령은 직접적으로는 국가안전기획부와 국가정보원의 도청 사건을 계기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정권에서 이뤄진 일들이어서 시효 문제로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나아가 과거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정권까지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말한 ‘국가 권력의 부끄러운 과거’는 대부분 이들 정권에서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

▽‘도청’ 대대적 처벌 가능=노 대통령의 뜻대로 안기부와 국정원의 도청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은 모두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 도청에 관여한 전·현직 안기부 직원은 물론 이들에게서 도청 내용을 보고 받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 핵심 인사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광복 60주년 기념행사 화보보기

도청 테이프 자료에 나오는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도 가능해질 수 있다.

공소시효가 3년으로 비교적 짧은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이 법이 제정된 1997년 이후 주고받은 불법 정치자금에 관련된 인사들이 모두 처벌 대상이다.


노대통령의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해 시효적용을 배제하는 법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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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철언(朴哲彦) 전 의원이 회고록을 통해 노태우 정부 시절 YS에게 40억 원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부분도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

결국 YS와 DJ 정권뿐만 아니라 그 이전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수많은 정치인이 다시 법의 심판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정계개편, 정치 지형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치권과 법조계 일부 인사들은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지배세력의 교체’ 또는 ‘연정 제안’ 등과 같은 정치적 구상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문제에 부닥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나타난 ‘과거 국가권력’에 북한정권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3조 영토조항에 의해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북한에도 미치므로 ‘북한정권’도 시효배제의 대상이 되는 ‘과거 국가권력’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6·25전쟁과 최근의 북한에서 이어지고 있는 반인권범죄에 대해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철수(金哲洙·헌법학) 명지대 석좌교수는 “과거문제를 전부 밝혀내자는 것이라면 북한정권이 저지른 일도 규명해서 처벌해야 한다는 셈이 된다”며 “그렇지 않고 남한 사회의 문제만 들춰내서 처벌한다고 하면 남한의 분열만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 홍수 사태=민사상 시효배제 대상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건은 국내 ‘의문사 1호’로 불리는 최종길(崔鍾吉) 전 서울대 교수 사건이다. 1심 법원은 올해 초 “소멸시효를 넘긴 2002년에야 배상을 청구했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해진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이뤄진 언론 통폐합 피해 언론사도 배상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2000년 1월 동아일보가 국가와 한국방송공사(KBS)를 상대로 낸 동아방송 반환소송에서 동아일보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것이 주된 패소 사유였다.

이처럼 민사사건에서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배상이나 보상의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위헌 소지는 없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이 크게 우려된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시효문제로 패소한 소송 당사자들이 무더기 소송을 제기해 감당할 수 없는 소송사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적 국민적 혼란 초래 우려=노 대통령은 재심사유를 “융통성 있게” 조정하자고 했다.

재심 사유를 완화하면 1950년대의 조봉암 선생에 대한 사형판결과 인혁당 사건 판결 등이 우선적으로 재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일반 형사사건의 피고인들이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경우에 따라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법조계 법학계 인사들은 노대통령 발언에 대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한 검사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헌법에 규정한 시효 문제를 특정 정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철수 교수는 ‘최종길 교수 사건’ 등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입법을 통해 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미 제주 4·3사건 특별법이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법 등 개별적인 법들이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소멸시효 배제나 재심청구 사유 완화를 통해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기보다는 국가적 국민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효 배제 조정 입법 대상 주요 사건(예상) 및 법적 문제점
구분대상 사건 법적 문제점
형사과거 국가정보기관의 도청 사건-헌법상 소급입법 금지 원칙 위배로 위헌 소지-법적 안정성 저해
수지김 사건 관련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개입 의혹 사건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군사정변
1970년대 인혁당 사건
1960년대 후반 동베를린간첩단(동백림) 사건
민사동아일보의 국가와 KBS 상대로 한 동아방송 양도 무효 확인 소송-법적 안정성 저해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 의문사 사건과 관련한 유족들의 국가 상대 배상 청구 소송
삼청교육대 피해자의 국가 상대 배상 청구 소송
전두환 정권 당시 보안사의 프락치 공작 사건인 ‘녹화사업’ 피해자들의 국가 상대 배상 청구 소송
재심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법적 안정성 저해
조봉암 사형 사건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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