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재산이 무슨 소용있나” 한강에 몸던진 갑부할머니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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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70대 할머니가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6월 29일 오전 9시 서울 동호대교 부근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정모(77) 씨.

당시 경찰은 이날 오전 5시경 반포대교 위 난간에서 할머니를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로 미뤄 자살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큰 누나가 사건 며칠 뒤 어머니의 통장에서 거액을 인출했다”는 등 타살 가능성을 제기해 와 정 씨의 당일 행적과 금전 관계 등을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정 씨는 서초구 반포동의 고급 아파트에 살았고 60억 원대에 이르는 재산가였다.

경찰 조사결과 정 씨가 사고 당일 오전 4시경 전화를 받고 나갔으며, 큰딸이 사고 며칠 뒤 어머니의 통장에서 1억6000만 원을 인출해 간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새벽에 전화를 걸어 온 이는 정 씨가 부른 모범택시 운전사였다.

사고 당일 새벽 정 씨는 평소 이용하던 모범택시의 운전사에게 “강바람을 쐬고 싶으니 다리 위에 내려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내린 뒤 운전사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경찰에 신고했다.

부랴부랴 반포대교로 달려 온 의경은 난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의경이 할머니에게 “집에 돌아가시라”고 말을 건네자 할머니는 “바람 쏘이러 왔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은 “정 씨가 고민하다 의경이 돌아간 뒤 투신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큰딸은 전에도 몇 차례나 예금을 인출해 간 적이 있었다. “죽고 싶다” “세상이 귀찮다”는 내용이 적힌 정 씨의 일기장도 발견됐다.

경찰은 “정 씨가 불행한 가정환경을 비관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정 씨의 남편은 10년 전 바람이 나 다른 살림을 차려 나갔고, 정 씨는 가정부와 단 둘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명문대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이 없는 40대 아들과 두 딸 사이에 유산 상속을 둘러싼 불화도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딸은 경찰에서 “남동생이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렸다”고 했고, 아들은 “누나들이 어머니의 돈을 번번이 갖다 썼다”고 맞섰다.

정 씨는 가정불화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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