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오전 9시 서울 동호대교 부근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정모(77) 씨.
당시 경찰은 이날 오전 5시경 반포대교 위 난간에서 할머니를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로 미뤄 자살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큰 누나가 사건 며칠 뒤 어머니의 통장에서 거액을 인출했다”는 등 타살 가능성을 제기해 와 정 씨의 당일 행적과 금전 관계 등을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정 씨는 서초구 반포동의 고급 아파트에 살았고 60억 원대에 이르는 재산가였다.
경찰 조사결과 정 씨가 사고 당일 오전 4시경 전화를 받고 나갔으며, 큰딸이 사고 며칠 뒤 어머니의 통장에서 1억6000만 원을 인출해 간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새벽에 전화를 걸어 온 이는 정 씨가 부른 모범택시 운전사였다.
사고 당일 새벽 정 씨는 평소 이용하던 모범택시의 운전사에게 “강바람을 쐬고 싶으니 다리 위에 내려 달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내린 뒤 운전사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경찰에 신고했다.
부랴부랴 반포대교로 달려 온 의경은 난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의경이 할머니에게 “집에 돌아가시라”고 말을 건네자 할머니는 “바람 쏘이러 왔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은 “정 씨가 고민하다 의경이 돌아간 뒤 투신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큰딸은 전에도 몇 차례나 예금을 인출해 간 적이 있었다. “죽고 싶다” “세상이 귀찮다”는 내용이 적힌 정 씨의 일기장도 발견됐다.
경찰은 “정 씨가 불행한 가정환경을 비관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정 씨의 남편은 10년 전 바람이 나 다른 살림을 차려 나갔고, 정 씨는 가정부와 단 둘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명문대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이 없는 40대 아들과 두 딸 사이에 유산 상속을 둘러싼 불화도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딸은 경찰에서 “남동생이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렸다”고 했고, 아들은 “누나들이 어머니의 돈을 번번이 갖다 썼다”고 맞섰다.
정 씨는 가정불화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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