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심부름 다 해 줍니다’=“아내가 초등학교 남자 동창을 만나는 것 같아요.”(기자)
“1주일이면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심부름센터 직원)
“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1주일에 150만 원이면 됩니다.”
수수료는 1주일에 120만 원부터 300만 원까지 다양했다. 50만∼100만 원을 더 내면 배우자가 만나는 이성의 이름, 주소, 직장, 연락처까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심부름센터 직원은 말했다.
A심부름센터는 감시 대상자가 외부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대화 내용을 녹음해 주겠다고 했다. 승용차에 도청 장치를 설치할 수 있지만 위험이 따른다며 웃돈을 요구했다.
B심부름센터는 한 달에 100만 원을 기본으로 감시 기간이 늘어날수록 월당 50만 원씩을 더 주면 통화 내역을 뽑아 줄 수 있다고 했다. e메일 확인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아내의 e메일 주소를 알려줘야 하느냐”고 묻자 C심부름센터 직원은 “그건 필요 없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알려주면 부인이 사용하는 모든 e메일 주소를 알아내 열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 직원은 “믿고 맡기라”고 짧게 대답했다.
▽내가 감시당한다고?=몇 백만 원만 있으면 누구든 감시할 수 있고, 반대로 언제든 감시당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감시 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개인 사업을 하는 40대 초반의 남성 D 씨는 언제부턴가 윗집에서 자신을 도청한다는 망상에 시달려 왔다. 참다못한 그는 아파트 맨 위 층으로 이사를 갔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D 씨는 주기적인 약물 치료를 통해 정상을 되찾은 듯 보였지만 최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보도를 접한 뒤 의사를 찾아가 “내 말이 맞지 않느냐. 이 사회는 도청이 횡행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증세가 심해지면 정신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적 망상형 성격을 가진 사람은 전 국민의 2∼10%로 추정된다. D 씨처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망상형 성격은 전 국민의 0.1% 정도.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 방범용 폐쇄회로(CC)TV처럼 타인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는 장비가 널리 보급되면서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
서울대병원 권준수(權俊壽·정신과) 교수는 “정보통신의 발전과 불신 풍조의 확산으로 망상형 성격을 가진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가족과 사회에 대한 신뢰감을 되찾아 주는 것 말고는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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