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어디서 본듯한’ 日여당의 취재 거부

  • 입력 2005년 8월 4일 04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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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 의원이 부당하고 비열한 방법에 의한 취재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취한 조치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다케베 쓰토무(武部勤) 간사장은 1일 ‘아사히신문의 취재를 거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자민당이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사회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온 대표적인 권위지다. 최근 스위스의 한 미디어전문기관이 50개국의 지식인, 정치인, 대학 교수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세계 최고의 신문’ 설문조사에서 8위를 차지해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굳이 설문조사 순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 신문이 전후 반세기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일본의 정치를 주물러 온 자민당에 ‘부당하고 비열하게’ 피해를 주었다는 논리인 셈이다.

자민당 측은 아사히신문 기자와 당 간부의 대화 내용이 한 월간지에 게재된 것은 아사히신문이 취재자료를 유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의 본질인 ‘자민당 실력자들이 NHK에 압력을 가해 군 위안부 프로그램을 축소 방영토록 했다’는 아사히신문의 보도 내용은 가려졌다. ‘집권당과 공영방송의 부적절한 유착’이라는 본질은 제쳐 두고 엉뚱한 문제로 분풀이에 나선 형국이다.

자민당의 아사히신문 공격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집권당이 본말을 뒤바꿔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도 그렇지만, 정권과 ‘코드’가 맞는 타 매체들의 행태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아사히신문과 노선이 다른 일부 신문들은 NHK 외압설이 제기된 뒤 진실규명에 나서기보다는 양측의 대립을 은근히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아사히의 소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집권당을 편들기도 했다.

일본 언론의 취재 창구는 공식 기자회견과 익명을 전제로 속내를 털어놓는 비공식 간담회로 구분된다. 정보의 질에서는 ‘비공식’의 영역이 ‘공식’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이번 일을 핑계로 그런 비공식 취재까지 집권당이 거부한다면 아사히신문으로서는 취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아사히신문은 “굴하지 않고 취재를 계속 하겠다”고 다짐했다.

언론이 권력 감시와 진실 추구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구상의 어떤 권력도 그런 언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해 준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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