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경림/걸친, 엄마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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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친, 엄마 - 이경림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

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 시집 ‘상자들’(랜덤하우스중앙) 중에서

그것 참, 돌아가신 어머니 옷을 다 불태우지 말고, 보공(補空)으로 넣고 남은 것들 한두 벌쯤 남겨둘걸 그랬다. 엄마를 팔에 꿰고, 목에 꿰고, 다리에 꿰고 펄렁펄렁 다닐걸 그랬다. 엄마 냄새를 폴폴 풍기며 매사 의기양양할걸 그랬다.

저이는 엄마를 온몸에 걸치고도 엄마를 부르는 걸 보니, 엄마는 얼마나 풍족해도 늘 얼마나 부족한가. 철들고 나이 들수록 부생모육지은 각별하다. 생각느니 다만 옷 한 벌뿐이 아니다. 세상은 통째 우리 어머니들의 유산이다. 당신이 낳은 나와 대상세계, 이 크나큰 유산이여! 봐라, 허공조차 엄마 옷처럼 펄럭펄럭.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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