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005년에 듣는 박정희 탓, 김영삼 탓

  • 입력 2005년 7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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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의 ‘남 탓 타령’이 불치병(不治病) 같다. 열린우리당의 상임중앙위원이라는 간부들이 경제난의 책임을 김영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15일 장영달 의원이 “경제 어려움과 양극화의 뿌리는 한나라당이 국가 경제를 망친 데 있다”고 하자 유시민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해인) 1979년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였다”고 거들었다.

같은 날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1990년대 주택 200만 호 건설 같은 정책이 잘못됐다고 거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의 정책을 신물 나게 탓하다가,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니 나중에는 어디까지 갈지 모를 일이다. 과거사 규명 작업이 진행되면 친일파 탓에, 그것도 모자라 조선 왕들의 이름까지 꺼내지 않을지 궁금하다.

노 대통령이 정식 취임한 지 2년 5개월이 됐다. 과거 정권들이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지금쯤은 현 정부의 노력으로 경제와 민생이 나아진 결과를 보여 줄 때가 됐다. 숫자가 좋아지지 않았으면, 희망이라도 느낄 수 있게 해야 책임 있는 정권 아닌가.

노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무렵 어느 회견에서 “각종 로드맵을 열심히 만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며 “경제대통령 한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내 임기 중에는 경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아주 내놓고 옛날 정권 탓을 할 참이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어야 국민이 덜 헷갈렸을 것이다. 지난 정권들이 현 정권만큼만 잘했으면 지금 온 국민이 소득 2만 달러, 3만 달러의 선진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노 대통령은 2주 전 “정치가 잘돼야 경제가 잘된다”고 했다. 맞다. 그런데 정치가 잘되게 할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내 투자가 부진하고,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며, 내수(內需)는 위축되는 악순환을 만든 정치적 요인의 주된 제공자가 현 정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하기만 해도 국민과 국내외 자본가들이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여지는 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지난해 말 386 정치인들에게 “남 탓만 하는 것은 (범죄자가) 알리바이를 내세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부 여당의 ‘남 탓 타령’이 계속될수록 희망을 접는 국민이 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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